일련번호만 목에 걸고 새 주인 기다리지만
열흘 지나면 안락사 당할 슬픈 운명
얘들아, 미안해
카메라 앞에 선 강아지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14-1-289’ ‘14-4-293’… 구조 장소와 순서를 뜻하는 일련번호로 구분만 할 뿐 아무도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한때 누군가의 귀염둥이였을 메리 삐삐 흰둥이는 일련번호가 적힌 목줄을 건 채 유기동물 공고절차에 들어갔다. 이들에게 ‘공고’는 생을 마감하는 카운트다운을 의미한다.
정부의 동물보호관리시스템(APMS, www.animal.go.kr)에 의한 유기동물 공고기간은 단 열흘. 그 동안 주인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입양 또는‘인도적 처리’즉, 안락사뿐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9만7197마리의 유기동물 중 2만3911마리가 ‘인도적으로’살처분 됐다. 질병에 의해 자연사한 경우를 합하면 유기동물 폐사율은 48%에 이른다. 전국 361개 동물보호소의 수용능력은 약 5만 마리 정도. 유기동물은 점점 늘고 보호 예산은 부족하다 보니 공고 후 ‘인도적 처리’까지 걸리는 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지난 13일 대전광역시 동물보호센터에서 공고 절차에 들어간 유기견들을 만났다. 자신을 버린 주인이 나타나야만 살 수 있는 역설적인 운명 앞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 배신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인 듯한 눈빛은 허공을 향해 끊임없이 흔들렸다. 사진 속 13마리의 유기견 중 세 마리는 16일 오후 1시 공고기간이 만료된다.
[임순례의 편지]
동물의 눈은 사람의 눈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더 깊은 호소력을 지닌다.
언어나 제스처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을 대부분 눈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속 열 세 마리 아이들의 눈은 희망의 징후를 모두 놓친, 깊은 절망과 포기를 품고 있다.
이 아이들의 사진을 보는 것은 내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다. 나는 명색이 동물단체의 대표이지만 한해 10만 마리 가까운 유기동물을 모두 구조하기에는 너무도 미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들은 순간의 호기심으로 열린 대문 틈을 나가 지옥의 시간과 공간으로 편입되었을 것이며, 어떤 아이들은 말도 안 되는 시답잖은 이유와 함께 한때 사랑 받았던 주인들의 손에 의해 버려졌을 것이나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은 동일하다. 열흘 안에 주인이나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영영 돌아 올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나야 하는 운명 말이다.
아마도 이 가혹한 운명의 근원은 구석기 시대,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시대에 인간이랑 가까이 지내기를 선택한 너희 늑대 조상 들이리라.
인간의 무책임과 이기주의를 간파하지 못하고, 너희들의 그 배신 모르는 충성심과 사랑을 그대로 돌려받으리라 착각한 그 순진한 조상들 말이다.
다음 생에는 말이다... 한국에서 동물로... 특히 개로는 절대 다시 태어나지 말기를...
너를 버린 그 하찮은 주인을 털끝 하나도 기억하지 말고 떠나 영원히 이 땅에 돌아오지 말기를...
영화감독·동물보호시민단체 KARA(Korea Animal Rights Advocates)대표
*** 취재후기
혹시라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초상을 담기 위해 인식표가 붙은 강아지를 한 마리씩 카메라 앞에 세웠다. “당신이 버린 반려동물이 여기에 있소. 며칠 후면 생을 마감할 지도 몰라요. 버릴 거면서 왜 같이 살자고 했나요?” 새까만 눈동자가 절규하듯 흔들렸다. 분노한 만큼 두려움에 떠는 강아지들을 촬영하는 동안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조명은 미리 세팅한 상태로 ?30초 이상 촬영하지 않기, 일부러 예쁜 모습을 꾸미느라고 스트레스 주지 않기, 조명에 과민반응을 보일 경우 즉시 촬영 중단...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는 김춘수의 시처럼 유기동물 하나하나의 이름이 다시 불려지고, 누군가에게 다시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사진부 기획팀=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