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도: 민란의 시대’ 주연 하정우
윤종빈 감독과 벌써 네 번째 영화다. 자신의 첫 주연 영화이자 윤 감독의 데뷔작인 ‘용서받지 못한 자’(2005)부터 ‘비스티 보이즈’(2008),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그리고 23일 개봉하는 ‘군도: 민란의 시대’까지. 윤 감독이 연출한 모든 영화에서 그는 주연으로 출연했다.
15일 오후 만난 하정우(36)는 “윤 감독은 함께 일하지 않을 때도 동네에서 자주 만나 친구처럼 지낸다”며 “다음 작품이 뭐냐고 묻는 것으로 시작해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됐다”고 했다.
영화 ‘군도’는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다. 엔니오 모리코네 풍의 음악으로 서부극의 향취를 더한 뒤 무협 활극과 코미디를 뒤섞은 복수극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나 ‘킬빌’에다 ‘홍길동전’과 ‘로빈 후드’를 교배한 느낌이랄까. 깊은 주제 의식이나 시대를 통찰하는 예리한 시각은 없지만 떠들썩한 활기가 넘친다.
윤 감독은 하정우에게 처음 시나리오를 건네며 “정말 재미있는 오락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윤 감독과 친한 모습을 보이는 게 실례가 될까 봐 촬영 현장에선 말을 거의 안 했다”는 그는 “감독의 의도가 불분명하면 배우가 불안해지는데 감독이 뭘 어떻게 만들려고 하는지 확신이 있어서 명확하고 정확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군도’는 최하층 천민 백정 신분인 돌무치(하정우)가 민초의 피를 흡혈귀처럼 빨아먹는 천하의 악당 조윤(강동원) 때문에 어머니와 여동생을 잃고 난 뒤 의적무리(군도ㆍ群盜) ‘지리산 추설’에 합류해 조윤과 탐관오리들을 혼내준다는 내용의 영화다. 10대 초반의 정신 연령을 지니고 있던 돌무치는 가족을 잃은 뒤 의적 도치로 이름을 바꾸고 군도의 특급 전사로 거듭난다. 그는 “깊은 시골에서 살 법한 인물에 코믹하고 유연한 캐릭터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맨머리 전사 도치의 삶은 고달팠다. 날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정성스레 면도를 하고 3시간 가까이 분장을 했다. 뜨거운 햇살이 두피 위로 내리쬐는 자갈밭에서 짚신만 신고 액션 연기를 하고 나면 서너 시간을 달려 승마 연습을 하러 가야 했다. 전라도 사투리도 입에 착 달라붙도록 연습해야 했다. ‘군도’ 밖의 일정도 빽빽했다. 지난해 촬영 도중 영화 ‘더 테러 라이브’ 홍보 활동과 첫 연출작 ‘롤러코스터’ 개봉 준비를 병행했다. ‘베를린’ 개봉부터 두 번째 연출작인 중국 작가 위화 원작의 ‘허삼관 매혈기’ 준비까지 다섯 편의 영화가 하정우의 2013년을 채웠다.
“지난해 12월쯤 ‘군도’ 촬영을 마쳤어요. 그러고 나니 에너지가 0이 된 것 같더군요. 그래서 6주 일정으로 혼자 하와이로 떠났어요. 가자마자 1주일간 감기몸살을 앓고 나니 외롭고 서럽더라고요. 돌아갈까 생각도 했는데 참고 쉬지 않으면 같은 패턴으로 정신 없이 보내겠구나 싶었어요. 애써 아무것도 안 하려고 했죠. 휴식도 정말 노력해야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 생긴 노하우로 이젠 촬영 현장에서 1주일에 2, 3일은 푹 쉴 수 있게 됐죠.”
‘군도’는 감독데뷔 후 처음 연기한 작품이라 남다를 만하다. 그는 “서른 편 가까이 찍으며 영화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직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며 “감독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됐고 배우로서 어떻게 감독을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롤러코스터’ 개봉 이후 연기뿐만 아니라 영화감독으로서 행보도 바빠지고 있다. 주연과 연출을 동시에 맡은 ‘허삼관 매혈기’는 벌써 19회차 분량을 찍었다. “연출과 연기를 동시에 하다 보니 첫 촬영 땐 연기에 집중을 못했는데 점점 배우로서 위치에 집중하게 됐다”고 했다.
때론 폭주기관차처럼 때론 완행열차처럼 하정우라는 이름의 기차는 쉼 없이 달리고 있다. “영화 ‘군도’의 제 모습은 스무 살 때 연극하면서부터 쌓은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감독으로서도 그런 과정과 경험을 쌓는다면 10년 뒤 사랑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게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해 보니까 영화라는 게 정말 어려운 거구나, 난 아직 한참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계속 나아가고 깨닫고 성장해야죠.”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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