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일정으로 여행을 왔다. 체크인 수속을 하고 카드 키를 받아 문에 꽂는다. 찰칵, 소리가 나기까지는 기껏해야 일초. 그러나 나는 이 순간 긴장을 풀지 못한다. 몇 년 전 진땀 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낯선 도시를 헤매다 숙소에 도착한 건 저녁때였다. 그때도 이런 카드 모양의 키를 받았는데, 도대체 작동이 되지 않았다. 마침 청소도우미가 복도에서 비품을 정리하고 있어 도움을 청했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일단 자신이 가진 만능키로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서자마자 나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까무룩 잠이 몰려왔다. 다시 눈을 뜬 건 얼마쯤 지났을 때일까. 화장실에 갔다. 세면대에 휴대용 클렌저가 있었다. 어라, 이런 게 비치되어 있네? 주전자에는 물이 담겨 있었다. 이런, 방 정리는 별로구나. 베개를 들어보니 트렁크 팬티가 나왔다. 와, 너무해, 명색이 호텔인데… 하며 부글부글 화가 끓으려는 찰나, 뭔가 석연찮았다. 방 호수와 숙박일정표에 적힌 숫자를 비교해 보았다. 아뿔싸, 내게 배정된 객실이 아니었다. 풀던 짐을 부리나케 다시 싸고 프론트에 굽신굽신 사정을 이야기한 후 방을 옮겼다. 그나마 주인이 돌아오기 전이라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 내리긴 했는데, 그새 갈아입은 티셔츠 하나를 흘리고 왔으니 어쩌나. 다음날 아침 문을 나서다 그 객실 주인과 마주쳤다. 지레 찔려 눈을 피했다. 그 사람은 내 티셔츠를 발견하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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