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신임 새누리당 대표는 정치권에서 ‘큰 형님’으로 통한다. 여의도에서는 ‘김무성 대장’의 의미로 ‘무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는 엇갈린 인연으로 굴곡도 많았다.
부산 출신의 김 대표는 전남 방직과 신한해운을 거느린 고 해촌 김용주 선생의 3남이다. 경총 회장을 지낸 김창성 전방 명예회장이 형님이며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 누님이다. 김 이사장의 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는 외삼촌이 된다.
정치적으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계보다. 김 전 대통령이 1984년 민추협을 결성하자 김 대표는 창립멤버로 참여했고 김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96년 신한국당 소속으로 15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뒤 부산에서만 내리 4선을 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 사무총장과 원내대표 등 주요 당직을 거치며 중진 반열에 올랐다.
박 대통령과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으면서 인연이 시작됐으며 한 때는 ‘원조친박’ ‘친박계 좌장’으로 통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9년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박 대통령과 의견을 달리하며 친박 그룹과 거리가 멀어졌고 2010년 급기야 박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고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면서 완전히 결별했다. 이른바 ‘탈박(脫朴)’을 한 것이다.
그러다 2012년 4ㆍ11총선에서 백의종군을 선언하면서 당의 총선 승리에 기여하고 18대 대선 직전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으로 복귀하면서 다시 박 대통령과 가까워졌다. 이른바 ‘복박(復朴)’을 한 것이다. 김 대표는 당으로 복귀한 뒤 당사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야전 사령관’역할을 자임했으며 19대 총선에서 낙천한 친이계 인사들까지 캠프에 합류시키는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선 이후에도 친박그룹과는 완전한 화해를 하지 못한 채 지난해 재보선을 통해 여의도로 복귀한 뒤에는 비주류 주변을 맴돌았다.
김 대표는 차기 대선 주자로 꼽히는 데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여권 내에서는 차기 권력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에서는 이에 대해 “비주류의 명실상부한 홀로서기 성공”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부산(63) ▦중동고, 한양대 경영학과 ▦삼동산업 대표 ▦대통령 민정ㆍ사정비서관, 내무부차관 ▦한나라당 사무총장ㆍ원내대표 ▦15~19대국회의원 ▦부인 최양옥씨와 1남1녀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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