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권 인사들은 표정 관리에 바쁘다. 7ㆍ30 재보궐 선거에서 최소 4곳도 못 건져 과반 의석이 무너질까 전전긍긍하던 게 엊그제 같았으나, 지금은 15곳의 선거구에서 절반 이상 승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게 표변한 이유가 “야당이 밥상을 스스로 걷어찼기 때문”이라는 데 여권 뿐만 아니라 야권조차도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공천 과정에서 일으킨 잡음을 두고 나오는 말인데, 2012년 4ㆍ11 총선 때도 익히 봤던 풍경이다. 계파간 쟁투는 격렬한 반면, 지도부의 리더십은 극히 취약한 야권의 약점이 공천을 통해 어김없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야권에 유리한 선거에서는 공천만 받으면 금배지를 달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공천 갈등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노골화한다.
야당이 밥상을 여당에 내민 격이나, 원래 이 밥상도 따져 보면 여권이 차려준 것이었다. 두 명의 총리 후보자가 잇따라 국회 인사청문회 문턱도 못 넘고 자진해서 낙마하면서 여권이 세월호 참사 극복은 고사하고 인사 파동의 늪에서 스스로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의 최대 약점이라 할 만한 인사 문제가 전면에 드러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도 지속적으로 추락해 야권이 호기를 잡았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여야가 서로 ‘반사’를 외치며 반사 이익을 주고 받은 셈이다.
거칠게 보면, 이런 행태는 오랫동안 지속된 우리 정치의 속성이다. 야권의 선거 단골 구호인 ‘정권 심판론’은 상대의 실패에 기반한 프레임이고, 여권의 단골 구호인 ‘정권 안정론’은 무책임한 야권을 겨냥한 것으로 두 쪽 다 상대의 헛발질에 대한 반사 이익을 도모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공방 속에서 유권자들도 최선을 선택하기 보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저 인물이 되는 것은 막아야겠다”는 심정으로 투표장에 가는 것은 아닐까. 지난 대선도 누가 더 호감을 얻었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염증이 컸는지 여부로 승패가 갈렸다는 게 개인적인 판단이다. 상대에 대한 염증을 부추기는 이 같은‘반사이익의 정치’가 구조적으로 고착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반사이익의 정치 구도 하에서 점수를 따는 ‘합리적인’ 전략은 간단하다. 상대 실수를 부각시켜 성토하거나 아니면 ‘가만히 있기’다. 다만 상대 실수에 너무 과민해서 대응하면 또 다른 헛발질이 나올 수 있고, 가만히 있다 보면 상대 실수가 묻힐 수 있는 일장일단이 있어 논쟁의 여지는 있다. ‘진보층 강화냐, 중도층 확대냐’식의 야권의 해묵은 노선 갈등도, 그 속내의 정치 행보를 들여다 보면 이런 류의 논쟁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여권도 굳이 무리하게 일을 벌이기 보다 ‘가만히 있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국무총리가 안대희ㆍ 문창극 전 후보자를 거쳐 다시 정홍원 총리로 원점 회귀한 것을 보면, 차라리 가만 있는 게 나았다.
다음 대선도 이런 연장선에서 보면, 야권은 또 어김없이 정권 실패를 기다리며 심판론의 프레임을 얼마나 더 예리하게 다듬을까 고심할 것이다. 반면 여권은 야권이 정권을 잡으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며 종북론의 또 다른 버전을 고민할 것이다. 이런 판이 벌어지면 유권자로서는 또 다시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저지하는 게 당면과제로 떠오를 수 밖에 없다. 누가 더 큰 헛발질을 하느냐가 승패를 가를 것이다.
‘반사이익의 정치’ 논리가 굳어진다면 굳이 힘들여서 정책을 개발하거나 국정 어젠다를 궁구할 필요도 없다. 가만 있어도 정권을 탈환하거나 정권을 수성할 가능성은 충분하니까. 적절하게 상대의 실수를 성토하다가 잠시 물러서는 정도의 템포 조절만 하면 되니까.
그러다 서로가 가만 있으면 어떡하냐고? 그땐 비장의 ‘못난이 카드’가 있다. “우리가 너무 못나서 이번 선거에서 대패할지 몰라요. 그렇지만, 이번 한 번만 힘을 실어주세요”라고 읍소하는 것이다. 서로가 더 못났다고 경쟁적으로 몸을 낮추는 전략이다. 벌써 7ㆍ30 재보궐 선거는 여야 모두 그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듯 하다.
송용창 정치부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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