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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서점에 들러 다 읽은 책 한 권을 팔려다가 매입을 거절당했다. 재고물량이 이미 차고 넘쳐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매장을 둘러보니 과연 그럴 만했다. 책장 한 칸의 절반 정도에 그 책이 줄줄이 꽂혀 있었다. 나는 마음이 좀 복잡해졌는데, 그 책이 신간으로 등록될 때의 위풍당당한 기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등장한 책이었다. 대형서점에 가면 눈에 가장 잘 띄는 판매대에 진열되어 있었다. 절찬리에 몇 십 쇄를 돌파했다는 광고가 떴고, 기대에 걸맞게 한동안 베스트셀러 순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독자를 거느려 인세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으니 참 좋겠다며 나는 그 작가를 조금 부러워했던 것도 같다.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 한때 불같이 사랑 받던 그 책들이 독자의 집에서 쫓겨나 헐값에 새 임자를 기다리고 있다. 워낙 많이 찍어댔으니 많이 버려지는 것일까. 패스트푸드와 다를 바 없는 패스트북. 제 자식 같은 책들이 이렇게 싸구려 취급 당하는 것을 보면 작가는 또 얼마나 속이 쓰릴지.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인세수입을 얻는 것이 마냥 부러워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잘 안 팔려서 절판된 책들은 뒤늦게나마 귀하게 대접받고 너무 잘 팔려서 발에 채이게 된 책들은 흔해빠진 천덕꾸러기로 전락한다. 하지만 세월에 따라 명암이 뒤바뀌는 게 어디 책뿐일까. 영화는? 노래는? 아아, 사람은 어떨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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