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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보금자리 빼앗는 '재건축의 늪'... 민간에만 맡겨둔 게 문제였다.

입력
2014.07.1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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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후 지역 개선 위해 70년대 도입 같은 면적에 서너배 많은 집 지어

건설업체를 너도나도 달려들어

지역주민도 멋모르고 뛰어들었다가 높은 분양가에 집 잃고 떠나는 신세

조합 해산하려해도 매몰비용 부담

건설사가 뒷돈 줘 사업 부추기기도 정부는 "민간 일이라서..."수수방관

고만고만한, 오래된 집들이 모인 사당1구역 재건축 지역. 이와 비슷한 마을을 헐고 재건축된 오른쪽 뒤의 아파트 단지는 조합원들이 파산 위기에 있다. 민간 건설시장에 맡겨 왜곡되어 버린 재건축은 이제 서민들의 집을 지켜주면서 동네환경을 개선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홍인기 기자 hongik@hk.co.kr
고만고만한, 오래된 집들이 모인 사당1구역 재건축 지역. 이와 비슷한 마을을 헐고 재건축된 오른쪽 뒤의 아파트 단지는 조합원들이 파산 위기에 있다. 민간 건설시장에 맡겨 왜곡되어 버린 재건축은 이제 서민들의 집을 지켜주면서 동네환경을 개선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홍인기 기자 hongik@hk.co.kr

“영감이랑 리어카 끌고 야채장사 해서 내 평생에 이 집(다세대 주택 반지하) 겨우 하나 마련했어요. 아파트로 재건축을 한다는 사람들이 저한테 ‘이 건물이 3층짜리인데 여기에 25층 올라가면 아파트 한 채를 못 주겠냐’고 해요. 돈 더 안내도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다니까 재건축에 동의를 했어요. 그런데 조합 승인이 나니까 언제 그런 말을 했냐고 해요. 알고 보니까 1억도 넘게 돈을 내야 되는 거예요. 그럴 돈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분양신청은 하지도 않았어요. 조합에서도 탈퇴했어요. 그런데도 조합이 그 동안 쓴 돈을 다 물어줘야 한대요. 그 돈이 어마어마해요. 재작년에 서울시에서 조합에 찬성하는 사람보다 반대하는 사람이 많으면 조합을 해산해도 된다고 그래서 이제 살았다 했어요. 그런데 재판에서 뒤집혔대요. 구청에서도 다시 재건축을 하라고 해요. 세상에 빼먹을 데가 없어서 나 같은 사람 집을 빼앗아 먹으려고 하냐고요.”김영애(67)씨.

“76년에 이 동네가 논이었어요. 그때 땅을 사서 집도 직접 지었어요. 대지가 35평이니까 재건축이 될 때 33평형 아파트를 신청하면 1억원은 되돌려 받을 거라고 해요. 그래서 재건축에 동의를 했어요. 그런데 재건축한다면서 우리집을 감정평가하더니 평당 1,230만원이래요. 아파트 조합원 분양가는 1,450만원이고요. 이 동네 땅값이 저 위 언덕도 평당 2,200만원이에요. 4,800만원을 더 내야 이 집보다도 적은 아파트를 얻는다니까 그걸 누가 하겠어요. 처음부터 감정평가액과 분양가를 일러줬으면 재건축 찬성도 안 했지요. 그래서 조합해산 신청을 했어요. 그런데 그 길도 막히고 조합이 쓴 돈은 우리가 물어내야 해산이 된대요. 왜요?”오기헌(62)씨.

“나는 노후대책이 이 집 한 채라 아파트에 살 능력이 없어요. 다달이 관리비 나가지 재산세 많이 나오지. 평생 택시운전이 그나마 편한 일이었고 안 해본 일이 없어요. 한 푼 두 푼 모아서 79년에 30평짜리 단독주택 하나 샀어요. 92년에 주택업자가 돈을 대서 3층 다가구로 올렸어요. 그때는 주택업자들이 다가구에 전세로 들어오는 돈을 빼가는 대신 공사를 해주는 식으로 많이들 개축을 했어요. 이젠 나이도 들고 지병도 있어서 여기 사글세로 먹고 살아요. 당연히 재건축에 반대했지요. 그런데도 여기는 재건축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우리같이 반대한 사람도 아파트 분양해서 생긴 수익에 그 동안 들어간 비용을 다 빼고 집값은 후불로 계산해 준다는 거예요. 여기 바로 옆 동네 아파트가 분양이 안되어서 조합원들이 지금 몇 억씩 빚을 지고 있어요. 파산 신청에 들어갔어요. 여기도 그렇게 안 된다는 보장이 어디 있어요. 그러면 저처럼 재건축 찬성도 안 한 사람도 집에서 쫓겨나고 집값은 받을지 말지 모른다는 말이잖아요. 서울시에 민원 하면 구청에 하라 하고 구청에 민원 하면 ‘법대로 처리했습니다’이래요. 저희 같은 사람 거리로 내쫓는 게 법대로예요?”유택영(74)씨.

서울 동작구 사당동 164~170번지에 살고 있는 진짜 서민들에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임금근로자의 대다수(90%)가, 버는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10.3년을 모아야 집 한 채를 살 수 있을 정도로 집을 갖는다는 게 턱없이 어려운 현실(7월 7일자 28면 보도)에서 그나마 집값이 싼 70~80년대에 집을 간신히 마련한 서민들이 집을 빼앗길 위기에 있다. 아파트 건설이라는 호재를 노리는 건설사와 조합, 이를 감싸고 도는 지방자치단체, 허점투성이 재건축 정책 때문이다.

재건축은 낙후된 지역을 개량 개선하기 위해 70년대부터 꾸준히 시행되어온 정책이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낙후 지역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아파트촌으로 바꿔버리는 폭력적 방식으로 이뤄졌다면 노태우 정부에 들어서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조합을 만들어서 하도록 형식적 절차는 민주화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집값이 치솟으면서 오래된 마을을 헐고 아파트 단지로 바꾸면 한 몫을 볼 수 있다는 현실 때문에 재건축 하면 오래된 동네가 아파트 단지로 바뀌는 것으로 자리를 잡았고 그 결과 허름한 주택이라야 살 수 있는 서민 세입자는 쫓겨나는 양상이 되었다. 아파트 단지가 될 경우 용적률(같은 면적에 지을 수 있는 건물 면적)이 400% 가까워서 똑 같은 면적에 4배나 많은 집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그 기대수익을 보고 건설사들이 달려들었다. 이들은 어떻게든 재건축이 가능하게 주택조합 결성을 지원하고 그 후 강제 철거작업과 반대하는 주민들의 퇴거에도 적극 자금을 댔다. 철거에는 ‘용역’이라는 이름의 폭력배들이 등장했다. 이 때문에 재건축이 일어나는 구역마다 강제철거에 반대하는 세입자들의 항의가 잇따랐고 살인과 자살, 폭력도 일어났지만 정부는 민간의 일이라 개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수방관했다. 게다가 재건축조합이 일단 결성되면 무르기가 힘들게 온갖 제약을 부여했다. 초기에는 주민들의 절반만 찬성을 해도 재건축 조합이 결성됐고 조합이 결성된 지역은 개인주택의 증?개축이 금지됐다. 단독주택에 세를 놓거나 하숙을 쳐서 먹고 사는 주민들이 반대를 해도 일단 조합이 결성되면 집을 수리조차 할 수 없게 되니까 울며 찬성을 하거나 동네를 떠나는 수 밖에 없다. 재건축이 이뤄지지 않으면 동네 전체가 낙후하고 심지어는 범죄에도 무방비로 노출이 된다. 현재는 주민의 3분의 2 동의로 재건축 조합이 결성되도록 바뀌었지만 일단 조합이 결성되면 무르는 게 힘든 것은 마찬가지. 아파트 건설을 기어코 성사시키려는 아파트 건설업체들의 노력도 집요하다.

지역 개량은 정부의 책임도 있는 것인데 집값 상승으로 민간에서 활발하다는 이유로 민간에 맡겨두기만 함으로써 지역 개선은 주민의 살 권리가 아니라 시장경제에만 맡겨져 흘러왔다. 재건축이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고 덤썩 덤벼든 지역주민들의 어리석음도 이것을 부채질했다.

서울지역을 보면 아파트 재건축의 용적률은 한때 250%선으로 떨어졌으나 오세훈 시장 이후 다시 올라가 300%에 이른다. 똑같은 땅에 세 배의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 땅값이 평당 2,100만원인 지역이라고 해도 실질적인 땅값은 3분의 1인 700만원이라서 건물 건설비용을 합친다고 해도 1,200만원 선에서 아파트 건설이 가능해진다. 서울지역 아파트 평균 분양가 1,900만원과 비교하면 한 평에서만 남는 돈이 어림잡아 700만원이다. 물론 이 돈에서 기존 주택 철거와 이주비 보상, 아파트 건설은 물론 분양까지 기다리는 동안 들어갈 금융비용, 광고비 등(이하 ‘관리비용’이라 칭한다)을 다 빼야겠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이윤이 보장이 된다. 1만 평짜리 단지라면 3만평의 건물이 나오고 2,100억의 이윤이 잡히니 관리비용을 감안해도 이익이 쏠쏠하다. 재건축을 둘러싼 공무원 뇌물사건이 터졌다 하면 수십억이고 조합장을 차지하려는 이권다툼이 살인까지 이어지는 것도 그만큼 재건축 이윤이 컸기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가 활황일 때는 분양까지 금융비용이 적게 들어서 건설업체가 뛰어들더니 부동산 경기가 죽은 다음에는 회사를 굴려야 할 절박감에서, 살아남은 대형건설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재건축을 지원한다. 이래저래 일단 재건축의 ‘덫’에 걸려들면 빠져나가기가 힘들다.

앞서 말한 사당동 164~170번지는 2010년 8월에 지역주민 243가구 가운데 204가구가 동의해서 조합이 설립됐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아파트가 돈도 안되고 자기 집의 감정평가액으로는 입주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가구가 이탈하며 조합설립 조건인 3분의 2 지지는 진작에 깨진 양상. 그런데도 이미 결성된 조합을 해산할 방법이 없다.

서울시가 2015년 1월까지 한시적으로 ‘주민들 50% 이상이 반대하면 조합을 해산할 수 있다’는 원칙을 2012년에 세워준 덕분에 이 지역 132가구가 조합해산 신청을 했고 동작구청은 2012년 11월에 조합해산(조합설립인가 취소처분)이라는 행정처분을 내렸다. 문제는 조합측이 이에 맞서 법원에 해산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낸 것. 6개월 내에 마치도록 한 행정소송 1심은 1년 반을 끈 끝에 올 4월에 재건축 조합편을 들어 해산 취소 판결을 내렸다. 해산처분을 요청한 사람들의 서류가 대필이 되었다는 점에서 본인 의사가 아니라고 판결한 것. 이에 대해 조합 해산청구를 요청한 쪽은 “남편이 손가락이 없어서 아내가 써주고 어머니나 아버지가 글씨를 몰라서 가족이 써준 것을 위조문서 취급한다. 무인(지문날인)은 본인 것이 맞다”고 분개하고 있고 조합측은 “주변 사람들을 끌어 모아서 대신 써준 서류로 조합을 해산하라고 요청한 것이 틀렸다는 걸 법원이 바로 본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에 대해 조합 해산 청구를 요청한 주민들은 항소심을 제기한 상태이다.

그러나 동작구청은 1심 판결에 따라 이미 6월에 조합에 관리처분계획을 인가했다. 관리처분계획이 인가되면 지역 내 토지나 건축물의 모든 권리자는 사업시행자인 조합의 동의 없이는 토지나 건축물을 사용하거나 수익을 낼 수도 없게 된다. 조합이 재건축을 실행할 수 있게 된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아니라 1심 재판이 끝난 상태에서 조합측 손을 들어준 이유에 대해 동작구청 최인수 도시관리국장은 “변호사 5인에게 자문을 받았는데 소가 번복될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명확히 들으려고 변호사 5인을 공개해달라고 하자 난색을 표시했다.

재건축이 시행되면 주민들은 아파트 분양에 참여하거나 감정평가에 따른 가격대로 집을 팔고 떠날 수 밖에 없다. 같은 비용으로 이 정도 교통입지에 같은 집을 마련하기는 어렵다. 재건축조합이 해산될 경우 그동안 들어간 비용을 해산청구자가 내야 한다는 규정도 반대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는 상황. 조합측은 2010년 조합 설립 이래 56억원을 썼으니 조합을 해산하면 이를 매몰비용으로 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재건축에 반대하는 이들은 “설계비가 21억원이나 되고 철거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철거계약금만 4억원이 산정되는 등 터무니 없는 비용”이라고 말하고 조합측은 “회계감사를 다 받은 자료이니 문제가 없다”고 맞선다. 그러면서도 조합측은 “재건축을 하게 됐는데 (필요없게 된) 매몰비용이 맞게 산정됐는지 왜 따지느냐”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 돈은 모두 재건축 시행사로 선정된 삼성물산이 무이자로 대출해준 비용이라고 조합측은 밝혔다. 건설회사가 뒷돈을 대주지 않았다면 무리한 지출과 그에 따른 부담도 없었을 것이다. 그에 따라 노후준비로 자그마한 집 한 채 가진 이들이 평생 땀 흘려 얻은 집을 잃을지도 모르게 됐다. 이게 과연 올바른 일일까.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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