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독특한 버릇이 있다. 이야기 할 때 눈을 심하게 깜박인다거나 긴장하면 손톱을 깨무는 등 그 형태는 다양하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버릇이 몇 개씩 있게 마련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초래하거나 본인이 불편하다면 개인 노력에 의해 고쳐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옛 속담처럼 잘못된 버릇일수록 고치기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버릇은 말들에게도 있다. 경주마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다양한 버릇들이 알려져 있는데, 이는 경기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마필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각 조의 조교사들은 말들의 버릇을 잡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한다.
일반적으로 경주마들의 버릇을 악벽(惡癖)이라고 말한다. ‘악벽’을 한자 그대로 풀어보자면 악할 악(惡)에 버릇 벽(癖)이다. 즉, 나쁜 버릇을 말한다. 그 형태에 다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경주마들이 이러한 버릇을 지니게 되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다.
첫째 ‘심리적 갈등’이다. 마방 안에서 혼자 생활하다보면 동료들과 함께 드넓은 초원을 뛰놀고 싶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럴 때 갈등요인이 되어 악벽으로 표출되게 된다. 둘째는 ‘불확실성’이다. 말들은 보통 분명하고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데, 낯선 사람이 다가오거나 낯선 곳으로 데리고 가면 공포심을 느끼게 되어 이상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행동의 제약’이다. 말은 본능적으로 자유로운 습성을 지니고 있는데, 좁은 마방에서 행동을 통제당할 때 여러 가지 악벽이 나타나기도 한다. 네 번째로 ‘지루함’도 악벽의 한 원인이 된다. 마방에 하루 종일 방치된다면 무료함에 지친 말이 이상행동을 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육체적 고통이나 컨디션이 나쁠 때’ 나타난다. 질병이나 부상 등에 의해 말이 느끼고 있는 통증이 야생성으로 인해 감춰져 있는 경우가 있는 데, 이럴 때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킨다면 훈련을 시킨 사람이나 그 행위 자체를 꺼리는 경향이 악벽으로 나타나게 된다.
악벽의 종류에는 대표적으로 ‘고착벽’, ‘교벽’, ‘끙끙이’, ‘이식증’, ‘축벽’, ‘기립벽’, ‘웅벽’, ‘도는 버릇’ 등 그 형태에 따라 다양한 이름들이 존재한다.
먼저 알아볼 ‘고착벽’은 쉽게 말해 움직이지 않는 버릇이다. 주로 마방에서 나오기 싫어 버티거나 훈련을 위해 경주로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경주로 입구에 멈춰서는 것이다. 이런 경우 말이 버티고 있는 한 방향으로 무리하게 끌기 보다는 원형으로 몇 바퀴를 돌게 한 후 원하는 방향으로 끌면서 악벽에 대처한다. 만약 실전에서 이러한 버릇이 발생할 경우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고착벽이 있는 경주마들은 출발대 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교벽’은 사람이나 다른 동물을 무는 버릇을 말한다. 주로 욕구불만 시 나타나는 버릇으로, 자신을 귀찮게 하거나 괴롭히는 사람을 공격적으로 물게 된다. 또한 야생의 말들은 집단 내에서 우월적 지위를 위해 다른 말들을 공격하기도 하는데, 경주마들은 개별적인 마방에서 생활하므로 경주마에게 있어서 교벽은 주로 사람을 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한편 말들은 동료 간의 친근감을 나타내거나 교배 시 가볍게 상대를 무는 경우도 있는데, 경주마들을 관리하는 코치들에게도 친근감을 나타내기 위해 가볍게 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 말의 경우에 ‘가볍게 무는 것’으로,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절대적으로 무는 행위는 악벽으로 분류한다.
다음으로 ‘끙끙이’는 석벽, 색벽이라는 말로도 불린다. 이 버릇은 쉽게 말해 공기를 빠는 버릇이다. 입을 벌려 밥통이나 기둥을 물고 공기를 빨아들이는 버릇을 말한다. 이럴 경우 위 속으로 공기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산통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또한 끙끙이는 다른 말들이 따라 하기 쉬우므로 이런 버릇이 있는 말들은 격리시키고 버릇을 고쳐나가도록 하는 게 일반적인 대처방법이다.
‘이식증’은 사료 이외에 다른 것들을 먹는 버릇이다. 주로 자신의 배설물이나 배설물이 묻은 깔짚 등을 먹기 때문에 위생적으로 문제가 생겨 산통의 위험이 높아진다. 이식증은 주로 소화기능이 떨어져 소화가 덜된 배설물에 식욕이 자극되기 때문이거나 절대적 공복감에 의해 나타나기 때문에 소화기능을 점검하며, 충분한 사료공급으로 균형 잡힌 영양공급에 의해 고쳐나간다. 또한 사료공급이 끝나면 입마개를 채워 사료 이외엔 먹을 수 없도록 강제하기도 한다.
‘축벽’은 발로 차는 버릇이다. 발로 차는 대상은 주로 벽이지만 사람을 찰 경우 큰 부상이 따르므로 매우 위험한 악벽으로 분류된다. 경주마들의 경우 축벽을 지닌 말들의 꼬리에 빨간 리본을 매달아 주의를 표시하기도 한다. ‘기립벽’은 앞발을 들고 서는 버릇을 말한다. 주로 기승자를 떨어트릴 목적으로 행하거나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거부하는 행동이다. ‘웅벽’은 몸을 좌우로 흔드는 버릇이다. 이 버릇은 목 부근의 근육이 비균형적으로 발달해 경주능력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경주마들에게는 특히 좋지 못한 버릇이다.
마지막으로 ‘도는 버릇’은 마방 안에서 쉼 없이 몸을 움직이며 도는 버릇을 말한다. 이 또한 마방 안에서의 무료함 때문에 나타나는 버릇으로, 쉬어야 하는 시간에도 빙글빙글 돌면서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경주마들에게 있어서는 경주능력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일부 팀에서는 이러한 버릇을 고치기 위해 마방 안에 염소나 닭 등을 함께 생활하도록 하기도 한다. 이 경우 본인의 동작에 의해 작은 동물이 다칠까봐 마방을 빙글빙글 도는 버릇을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가까운 렛츠런파크(옛 경마공원)에 들러 경주마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해보는 것도 좋겠다.
안민구기자 amg@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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