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미술관 '가면의 고백' 展
회화 ㆍ영상 ㆍ사진 작품 43점 모아

고백은 더 이상 두렵거나 경건하지 않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에 차고 넘치는 사생활 고백은 놀이처럼 가볍고 공개된 구경거리다. 남의 눈을 의식한 이런 고백을 진짜 고백이라 할 수 있을까.
서울대미술관이 10일 시작한 ‘가면의 고백’은 미디어 시대에 고백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전시다. 자기 치유적인 고백 예술로 유명한 루이즈 부르주아를 비롯해 국내외 작가 23명의 회화, 설치, 영상, 사진 등 43점을 모았다.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가면의 고백’에서 전시 제목을 가져왔다. 소설 속 문장이 입구에서 관객을 맞는다. “사실 고백의 본질은 불가능입니다. 누구도 자신의 진짜 얼굴을 차마 내놓지 못합니다. 다만 살까지 파고든 가면만이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전시는 프롤로그, 가짜 사건을 고백하는 자, 고백을 엿보는 자, 에필로그의 네 부문으로 나눠 작품을 배열했다. 프롤로그에 놓인 정문경의 작품은 인형의 안과 밖을 뒤집어서 겉과 속의 차이를 드러낸다. 개인의 추억이 SNS를 통해 증식되고 변형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황연주의 ‘장소감 연구’가 에필로그를 장식한다.
‘가짜 사건’은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의도적인 편집이나 조작으로 꾸며진 사건을 가리킨다. 김아영은 끔찍한 살인 등 범죄 현장의 이미지를 편집해 전혀 다른 맥락으로 재구성했다. 진짜 나무와 진짜 같은 나무, 그리고 나무 사진으로 구성한 오제훈의 작품은 진짜 같은 가짜를 대변한다.
두 번째 섹션, ‘고백을 엿보는 자’의 작품들은 만인이 만인에게 고백하고 서로 엿보는 심리를 다룬다. 예기(김예기)가 프랑스 유학 시절 자신이 살던 곳 맞은편의 건물을 훔쳐보며 찍은 사진들은 엿보는 자의 짐작 혹은 적극적인 해석을 담고 있다. KKHH(강지윤+장근희)의 4분 55초 비디오 ‘K씨 추적’은 온라인에서 알게 된 K씨의 흔적을 좇아 오프라인에서 그를 추적하는 프로젝트다. 건물 모형들과 영상으로 이뤄진 정정주의 설치작품 ‘응시의 도시’는 관객의 움직임을 투사함으로써 엿보는 자를 엿보는 또다른 시선을 깨닫게 한다. 부부 작가 로와정의 비디오 ‘치밀한 작전’은 끝내 진실에 다가갈 수 없는 소통의 한계를 보여준다. 관객은 텅 빈 공간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을 수 있지만, 대화의 내용은 알 수 없고 그저 추리할 뿐이다.
루이즈 부르주아의 진실한 고백은 가짜 고백과 엿보는 시선들로 포위된 전시장 한복판의 작은 방에 따로 놓여 있다. 36장의 헝겊을 바느질해서 책처럼 만든 ‘망각의 시’를 볼 수 있다. 그에게 바느질은 내면의 상처로 남은 유년 시절의 기억을 치유하고 정화하는 고백이었다. 전시는 9월 14일까지 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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