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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의 역사 지워가는 일본

입력
2014.07.1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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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지서 추도시설 고치고 없애기, 군마현도 조선인 추도비 철거 요청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시 현립공원 '군마의 숲'에 있는 조선인 강제징용 희생자 추도비. 도쿄=교도 연합뉴스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시 현립공원 '군마의 숲'에 있는 조선인 강제징용 희생자 추도비. 도쿄=교도 연합뉴스

일본 도쿄에서 서북쪽으로 100㎞쯤 떨어진 군마현 다카사키시 현립 공원 ‘군마의 숲’에는 한국인 강제연행 희생자 추도비가 서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징용돼 가혹한 노동 등으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비다.

일본 시민단체가 2004년에 세운 나지막한 직사각형 비석은 앞면에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글을 먼저 일본어로 그 아래 한글로 이어 영어로 써놨다. 뒷면에는 한국인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준 점을 깊이 반성해 다시는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하는 글을 일본어와 한글로 적었다.

그런데 군마현은 11일 이 추도비를 철거하라고 비석을 관리하는 시민단체에 요청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군마현 당국은 “조선인 추도비 설치 허가 문제가 정치문제화 되는 등 휴게 공간인 공원 안에 추도비가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시민단체 ‘조선인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에 자진 철거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앞서 군마현 의회는 지난 달 16일 보수 단체 등이 추도비 설치 허가 취소를 요구하며 제기한 청원을 찬성 다수로 가결했다.

일본이 군국주의 시절 대외 침략을 통해 주변국에 준 가해의 기억을 하나 둘씩 지워가고 있다. 군마현 뿐 아니라 일본 각지에서 보수 단체와 언론이 부추긴 이 같은 추도비 철거 움직임이 잇따르기 때문이다.

지난 5월에는 후쿠오카현 이즈카시에서 관리하는 묘원(墓園) 내 한국인 추도시설의 비석에 일본의 전쟁책임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주민이 내용을 고치거나 철거하라고 시의회에 요청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는 기사가 보수 산케이신문에 실렸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곳 주민들 역시 “공동묘지가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시설은 재일한국인들과 노동단체 관계자들로 구성된 ‘재일지쿠호우코리아 강제연행 희생자 납골식 추도비 건립실행위원회’가 지난 2000년 시의 허가를 얻어 만든 납골당 ‘무궁화당’과 추도비로 구성돼 있다. 보수 우익으로 추정되는 주민들이 문제로 삼은 것은 비석 앞면에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따라 많은 조선인과 외국인이 일본 각지에 강제연행됐다’ ‘지쿠호우에는 15만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탄광에서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대목이다. 이들이 탄광에서 일한 것은 맞지만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했는지, 규모가 얼마인지는 비석의 문구가 맞다는 증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산케이신문은 지난 달에 나가사키 평화공원에 있는 ‘나카사키 재일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건립한 추도비에 담긴 ‘무력으로 조선식민지화’ ‘토지 강탈’ 등의 문구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해 말에는 홋카이도 북부 지자체에서 한국 정부가 지원하고 현지 시민단체가 주도해 이곳에 징용돼 희생된 한국인들을 기리는 추도비 제막식을 설치 장소와 비문 내용 등을 문제 삼아 중지시킨 적도 있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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