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청문회를 보며 국민이 떠올렸을 법한 영화 대사다. 국민 능욕하려 기어이 청문회에 그들을 세웠나. 정권에 잘만 보이면 이런 자들도 장관 될 수 있다는 건가.
“엊그제 교육부총리 청문회는 절망을 넘어 연민까지 느껴야 하는 블랙코미디였다. (…) 왜곡 언론 탓에 지금까지 말을 아꼈다면서도 지명 후 꼬리를 문 수십 가지 의혹 중 어느 하나도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했다. 제자들이 대신 써 준 탓인지 몰라도 평소 칼럼에서 주장하던 소신들은 의원들의 질문에 쉽게 흐려지고 구부러졌다. 청문회가 끝나기도 전부터 도덕적 흠결에, 자질 부족이라는 결정적 허물이 덧보태졌다. TV 밖에선 한탄이 쏟아졌다. ‘이렇게도 인물이 없나.’ ‘어쩌다 이 나라가 이 꼴이 됐나.’ (…) 국민을 물로 보지 않고서야 이처럼 국민 욕보이는 청문회가 가능했을까. (…) 존경받아야 할 총리·장관이 희화화되고 조롱감이 되는 사이 큰빗이끼벌레처럼 증식하는 국민적 자괴감은 도대체 어떻게 수습한다는 말인가.”
-슬픈 청문회(중앙일보 ‘분수대’ㆍ이훈범 국제부장) ☞ 전문 보기
“청문회 결과 문제는 역시 문제였다. 김명수 후보는 제자의 논문을 가로챘고 실적을 허위로 올렸으며 남의 연구비를 떼먹었다. 그는 관행이라 했는데 이렇게 더러운 현실이 대학가의 관행이라면 더더욱 그는 장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바로잡을 기회조차 묻어버리기 때문이다. (…) 정성근 문화부 장관 후보는 상습적인 음주운전과 수구적 가치관만 문제가 되었으나 청문회를 계기로 더 심각한 문제들이 드러났다. 자녀 둘을 불법조기유학 시켰으며 그 결과 아내와 딸이 미국영주권을 갖고 있다.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기 위해 소유권 이전등기를 늦추는 불법도 저질렀다. (…) 범죄자를 처벌하기는커녕 장관으로 모시면서 이 정부가 무슨 개조를 하겠다는 것인가. 그런 개조라면 개선이 아닌 개악이 분명하다. (…) 공직에 나섬으로써 부끄러운 과거들이 모두 드러나는 정도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충분히 이뤄진 것이다. 이제 한 걸음 나아가 잘못에 따른 처벌까지 확실히 받아야 이명박 정부는 물론 노무현 정부보다 개선되었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게 바로 적폐를 해소하고 국가를 개선하는 가장 쉽고 단순하고 명확한 해결책이다. (…) 그러나 현실에서 박근혜 정부는 ‘국가개조범국민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국가개조를 하겠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범죄자들을 장관으로 임명할 태세다. (…) 박근혜 정부에 묻는다. 국민을 얼마나 얕잡아 보면 건전한 시민자격도 없는 파렴치한 이들을 공복으로 부리겠다는 것인가.”
-범죄를 처벌하라(한국일보 기명 칼럼ㆍ서화숙 선임기자) ☞ 전문 보기
고층 아파트에서 서울 야경을 내려다보는 장면은 흔히 부(富)를 표현하는 영화의 클리셰다. 때로 경관은 사유물처럼 독점된다. 빌딩-장벽은 시선을 차단할 뿐 아니라 풍경을 더럽힌다.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대도시가 국립공원으로 인정받은 산자락에 기대고 있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한강 변에 서면 그 풍요로운 서울의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끝없이 이어진 아파트의 장벽에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 한강이 강변 아파트 주민들에게 독점 당하고 남산이 주변 빌딩 주인들만의 정원으로 전락하면서, 시민들은 서울 한복판인 한강에서 서울을 바라볼 수 없게 됐고 남산 바로 밑에서 남산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 최근 판교신도시에 들어선 단독주택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 할당된 자기 필지를 꽉 채워가며 욕심껏 최대로 짓다 보니 집들은 옆집과 다닥다닥 붙고 말았다. (…) 비움의 여유를 상실한 그 건물들에서 오로지 용적률, 건폐율의 최대치 실현이란 목적으로 ‘집의 미학’을 저만치 던져놓았던 다세대건물들이 오버랩 됐다. (…) 밀집된 거주공간은 대자연 속 별의 기운을 마시며 하룻밤을 보내겠다고 떠난 캠핑장에서도 마찬가지다. (…) 캠핑장이 아니라 난민촌이란 소리가 나오든 말든 텐트 한 동이라도 늘려 돈 몇 푼 더 벌겠다는 욕심 때문이다. 한 치의 공간도 낭비해선 안 된다는 강박이 우리를 질식하게 만들고 있다. 더 높게 치솟는 욕망이 우리의 소중한 풍경을 빼앗아가고 있다.”
-한강에선 서울이 보이지 않는다(한국일보 ‘36.5°’ㆍ이성원 사회부 차장대우) ☞ 전문 보기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볼 권리, 경관권은 어느 정도까지 보장되어야 하나? 서울시민들은 이미 그 경관권의 상당 부분을 내놓고 있는지 모른다. 한강변에 병풍처럼 서 있는 수많은 고층 아파트들을 보라. (…) 역사문화재는 빽빽한 고층빌딩 경관으로부터 어느 정도까지 보호받아야 할까? (…) 종묘는 높은 나무 등으로 주변 도심과 격리돼 있다. 그래서 종묘에 들어서면 경건한 분위기 속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까지 준다. 이런 점을 고려해 문화재위원들은 종묘의 중심건물인 정전에서 바라볼 때의 경관권을 두고 심의를 벌이고 있다. (…) 종묘제례 행사 때 왕의 행차가 시작되는 종묘광장까지 복원되면 정말 굉장할 것 같다. 하지만 그곳 바로 앞에 고층빌딩이 우뚝 서 있다면? 제사가 재현되는 정전 앞에 육중한 빌딩의 3~4개 층이 눈에 띈다면? 조선시대의 감성을 느껴보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타임머신은 작동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신 그 빌딩에 들어갈 수 있는 여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종묘와 종묘제례 행사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것이다.”
-종묘의 경관권 방정식(7월 2일자 한겨레 ‘한겨레 프리즘’ㆍ음성원 사회2부 기자)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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