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서 식물성 기름 소비 늘지만 비만ㆍ암ㆍ당뇨병 질환 오히려 늘어
"포화지방이 주범 아닐 수도" 일반 상식 깬 목소리 높아져
고령인의 경우 지방 섭취 꼭 필요
골고루 균형 있게 먹는 게 건강 도움
식물성 기름(vegetable oil)은 올리브유처럼 과육에서 짜내기도 하지만, 대개 씨앗으로 만든다. 카놀라유, 해바라기유, 콩기름, 포도씨유, 미강유 등이 대표적이다.
“식물성 기름은 몸에 좋고, 동물성 기름은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는 말은 상식으로 여겨진다. 1980년 미국 보건부와 농무부가 발표한 국민 식생활 지침 6개 중 세 번째로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의 지나친 섭취를 피하라’고 한 것이 발단이다.
이유는 단순 명료하다. 동물성 기름에 많이 포함된 포화지방(혈관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나쁜 콜레스테롤을 늘리는 지방으로 상온에서는 고체 상태)과 콜레스테롤(중성지방, 고밀도 콜레스테롤, 저밀도 콜레스테롤을 합친 개념. 혈중 콜레스테롤이 200㎎/dL 이하면 바람직한 수준이고, 240㎎/dL 이상이면 고지혈증)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가고, 그러면 심장마비 발병률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반면 식물성 기름에 많이 포함된 불포화지방은 포화지방에 비해 나쁜 콜레스테롤을 증가시키는 빈도가 낮아 심혈관 질환을 감소시키는 데 효과적인 지방으로 알려져 있고, 주로 상온에서 액체 형태다.
그래서 요즘 ‘라이트’ ‘저지방’ ‘99% 무지방’ 식품이 인기다. 슈퍼마켓에서는 지방 함량이 많은 고기보다 지방 함량이 적은 고기가 두 배나 더 비싸게 팔린다.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건강식’ 마가린은 일반 버터보다 서너 배나 비싼데도 사람들은 버터를 더 이상 사지 않는다.
식물성 기름, 동맥경화ㆍ당뇨병ㆍ알레르기 유발?
그런데 ‘건강에 좋은’ 식물성 기름이 오히려 각종 질병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음식 끊기’ ‘달콤한 독’ ‘지방을 둘러싼 거대한 거짓말’ 등을 펴내 세계적인 건강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호주의 데이브드 길레스피는 ‘식물성 기름, 뜻밖에 살인자’(북로그컴퍼니 발행)를 국내 출간했다. 길레스피는 “각종 통계자료를 보면 선진국에서는 건강에 좋다는 식물성 기름 소비가 늘고 있지만 비만, 암, 당뇨병, 심혈관계 질환자는 오히려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동물성 기름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식물성 기름이 우리 몸을 해치는 진짜 범인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식물성 기름을 먹게 된 것은 건강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가축을 키워 도축하는 것보다 식물 씨앗에서 화학적으로 추출한 기름으로 식품을 만든 편이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그는 일반인이 진실처럼 알고 있던 건강 상식과 통념을 깨는 최신 증거를 제시한다. 동맥경화를 보자. 사람들은 흔히 끈적끈적한 ‘동물성 기름’이 동맥벽에 쌓여 혈관을 막기 때문에 동맥경화가 생긴다고 알고 있다. 따라서 혈관을 청소하는 ‘식물성 기름’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그는 “동맥경화는 식물성 기름에 포함된 다가 불포화지방산(몸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아 음식으로만 섭취해야만 하는 필수지방산. 대표적인 것이 오메가-3 지방산과 오메가-6 지방산)이 산화돼 동맥벽을 손상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건강을 위하려고 식물성 기름을 먹었는데, 실은 동맥경화가 일어나도록 부채질한 격이다. 이밖에 알레르기, 실명, 당뇨병 등 우리를 위협하는 각종 질병의 원인이 식물성 기름이라는 증거와 연구결과가 점점 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심장병, 제2형 당뇨병, 암 발병률이 매우 높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가 불포화지방 함량이 높은 식단 즉, ‘완벽한’ 식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 과학 저널들은 이런 상황을 ‘이스라엘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이는 ‘프랑스 패러독스’와 정반대 상황이다. 프랑스 사람들의 식단은 포화지방 함량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질환에 걸리는 비율이 매우 낮다.
반면 다가 불포화지방산 섭취가 많지 않은 비(非)유대교 이스라엘 사람들의 경우, 당뇨병 발병률은 유대교 인구에 비해 1.5배 낮고, 심장병 사망률은 2.3배, 암 사망률은 3.4배 낮았다.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줄여도 심혈관계 질환이 줄어들지 않아 심혈관계 질환의 주범이 아닐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식물성 기름도 많이 먹으면 해가 된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몸에 좋은 단일 불포화지방산(오메가-9계 지방산)의 대표적인 식물인 올리브유도 한 번에 40~50㎖ 정도 먹으면 항산화 성분의 함유량과 상관없이 혈중 지질에 이상이 올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에너지 소모가 많은 사람이라면 움직여도 다 써 버리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동물성 지방, 약 되는 사람도 있어
몸에 나쁘다고 알려진 포화지방이 꼭 필요한 사람도 있다. 운동을 심하게 하거나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 에너지 소모가 많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많이 움직이는 만큼 체내 지방 축적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소화가 잘 안 되고, 조금만 많이 먹어도 속이 더부룩한 사람은 규칙적으로 조금씩 동물성 지방을 섭취해야 한다.
박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65세 이상 고령인의 경우 몸에서 빠져나가는 근육을 붙잡으려면 지방 섭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 몸에는 650개의 근육이 있는데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근육이 줄어든다. 이런 현상은 35세를 넘으면 더욱 두드러져 여성은 10년마다 1㎏, 남성은 1.5㎏ 정도의 근육이 소실된다.
그런데 규칙적으로 살코기를 조금씩 먹으면 근육과 근력이 그대로 유지되고 골절이나 퇴행성 관절염의 위험도 줄어든다. 특히 살코기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다만, 살코기에 골고루 박힌 하얀 줄무늬의 지방(마블링)은 콜레스테롤을 증가시킬 수 있으므로 섭취를 제한하는 게 좋다.
그러면 건강에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영양소인 지방이 왜 문제가 될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너무 많이 먹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섭취하는 오메가-6 지방산(염증을 일으키고 혈전을 만들어 몸 안에 충혈이 있을 때 피를 응고시키는 역할을 한다)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카놀라, 목화씨, 대두, 해바라기씨, 홍화씨, 쌀겨, 포도씨로 만든 ‘식물성 기름’에 다량 함유돼 있다. 가령, KFC에서 감자튀김을 한 봉지만 먹어도 하루 기준치보다 거의 두 배나 많은 오메가-6을 얻는다. 오메가-3의 경우, 감자튀김에서 하루 기준치의 3분의 1(0.54g)을 얻는다.
이 때문에 비만이 되기도 하고 각종 생활습관병이 생긴다. 박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자고로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며 “음식물도 다른 영양소와 균형은 물론 지방끼리의 균형을 맞춰서 먹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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