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재 "경기 하방 리스크 커져" 성장률 전망치 3.8%로 하향조정
한국은행의 경기 인식이 크게 어두워졌다. 금융통화위원 1명은 아예 금리 인하에 표를 던지면서 13개월째 이어져 오던 만장일치 금리 동결 행진도 멈췄다. 불과 두 달 전 금리 인상 신호를 보냈던 한은이 방향을 틀어 미미하게나마 금리 인하 쪽의 깜박이를 켜고 나선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르면 8, 9월 금리 인하 가능성까지 대두되기 시작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강력한 경기 부양 드라이브에 결국 중앙은행까지 가세하는 듯한 모양새다. 경제정책의 브레이크 없는 과속 행진, 그리고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에 대한 우려도 들끓는다. ★관련기사 18면
이주열 한은 총재는 10일 금통위 회의 직후 기자 회견에서 “세월호 사고의 영향으로 내수가 위축됨에 따라 성장세가 다소 둔화됐다”며 “성장경로상 국내 경제의 하방 리스크(경기 하향 위험)가 다소 큰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지난 달 ‘경기 회복세가 주춤해졌다’는 표현보다 훨씬 더 부정적이다. 물가에 대해서도 “물가상승 압력이 종전 예상보다 다소 약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실제 한은은 이날 내놓은 경제전망 수청치에서 올해 경제성장률을 4.0%에서 3.8%로,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1%에서 1.9%로 각각 내려 잡았다.
이날 금통위 회의 결과에도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하면서 14개월째 동결 행진을 이어가긴 했지만, 금통위원 7명 중 1명이 만장일치를 깨고 ‘소수 의견’을 냈다.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이 위원은 금리 인하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는 특히 정부와의 정책 공조와 관련해서도 “최 후보자와 경제를 보는 시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은행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정부 정책 효과가 최대화될 수 있도록 조화롭게 통화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정책공조라고 본다”고 말했다. 최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해 사실상 금리 인하를 요구한 것에 대한 화답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향후 통화정책의 방향이 금리 인하라고 단정하기는 무리다. 상당 기간 동결 행진이 더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그 동안 금통위에게 동결과 금리 인상의 선택지가 있었다면 이젠 동결과 더불어 금리 인하의 선택지를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날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 기대감이 확산되며 채권값이 강세를 보였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02%포인트, 5년물 금리는 0.05%포인트 하락했다. 시장이 기대하는 대로 한은이 조기 금리 인하에 나선다면, 그 후폭풍도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채권시장 한 관계자는 “작년에 김중수 전 총재가 그랬듯 이주열 총재도 깜박이를 바꿔가며 정부의 입맛을 맞추려 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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