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시그널
"통화 정책과 정부 거시 정책 조화롭게 운용하는 게 필요"
"경제전망 유효 전제 금리인상"서 "성장세 주춤" 한 발 더 물러서
"이르면 내달 금리인하 가능성" 채권시장선 기정사실화
물론 경제 상황이 바뀐 것도 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소비 침체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가파른 원화 가치 상승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예측력이 뛰어나야 할 중앙은행이 두 달 사이에 보여준 급격한 인식 변화는 순수하게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친박 실세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대로 한국은행이 움직이고 있는 것 자체가 우연의 일치라고만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확연히 달라진 발언
10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은 여러 면에서 이전 발언과는 비교가 된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 내내 ‘하방 리스크가 예상보다 크다’ ‘성장세가 주춤하다’는 등의 표현을 수 차례 거듭했다. 이 총재는 “금리를 낮추게 되면 가계부채 문제나 전세가격에 분명히 영향을 주지만 여러 플러스, 마이너스 효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금리조정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고도 했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금융실장은 “금통위 내용을 설명하는 이 총재의 말들은 예전보다 훨씬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의 길을 열어놓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날 이 총재의 발언들 가운데 가장 금리 인하의 가능성을 끌어 올린 부분은 최 후보자에 대한 동조적인 메시지들이다. 그는 “경제를 보는 시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며 “통화정책과 정부의 다른 거시경제정책들은 어떻든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를 수행하면서 정책효과가 최대화 될 수 있도록 조화롭게 운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되살아 나는 기시감
지난해 현 정부 출범 후 추가경정(추경)예산 편성이 논의되던 무렵, 당시 김중수 총재는 당정청의 아주 노골적인 금리 인하 압력을 받았다. 작년 4월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를 점쳤지만 결과는 동결. 김 총재가 금리 인하 압박에 맞선 결과였다는 평가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바로 다음 달, 한은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불과 한 달도 채 버티지 못하고 두 손을 든 것이다. 김 전 총재에게 “좌회전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던 게 바로 이 때였다.
이 총재는 부총재 시절 김 전 총재와 강력한 대립각을 세웠던 인물. 하지만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그 때와 상당히 닮아있다. 지금도 최 후보자가 추경 편성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상황. 정부의 확장재정 정책이 확실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통화정책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수 차례 내비쳤다. 취임 한 달 뒤인 5월 이 총재는 “굳이 기준금리의 방향을 말하자면 인상”이라고 말했지만, 지난 달 “당시의 경제전망이 유효하다는 전제였다”며 꼬리를 내렸고, 다시 이날 “경기의 하방 리스크가 커졌다”며 한 발 더 물러섰다. 금리 동결 행보를 이어가긴 했지만 이 총재 역시 깜박이를 바꿔 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지는 이유다.
이르면 내달 금리 인하?
전문가들은 여전히 여러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적어도 채권시장 참가자들은 이제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심지어 이르면 다음 달 금리 인하를 점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정범 한국투자증권 경제분석 수석연구원은 “금리인하 시그널을 확실히 준 만큼 8월 중 금리인하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며 “특히 이주열 총재가 하방리스크를 언급하고 3.8% 성장률 전망에 대해 잠재성장률 수준에 부합하는 정도라 말한 것 등에서 금리인하의 메시지를 읽는다”고 말했다. 박종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금통위가 근본적으로 경기전망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정부와 ‘고유 역할을 조화롭게 하자’는 대목에서 더욱 금리 인하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었다”며 “최경환 경제팀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내놓고 이에 화답하는 식으로 한은이 8월 금통위에서 금리인하를 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한은과 정부의 경기상황에 대한 인식의 접점이 매우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양측의 경제 정책들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내다봤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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