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 이어진 돌담길과 대숲
처마 밑엔 제비 둥지, 두꺼비 팔짝
전통한옥의 멋과 정취 고스란히
전남 보성군 득량만간척지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 하나 있다. 경전선 득량역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달리면 닿는 오봉산 자락 아래의 강골마을이다.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밖에선 마을의 형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숲 한가운데에 똬리를 튼 듯 자리 잡은 마을엔 전통한옥의 아름다움과 옛 정취가 남아 있다. 담벼락엔 담쟁이덩굴이 늘어졌고,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길과 대숲 등 소박한 풍경이 푸근한 외갓집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사람 사는 집이면 처마에 둥지 튼 제비와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두꺼비가 꼭 있는, 청정의 자연과 박제되지 않은 전통이 살아있는 마을이다.
광주이씨(廣州李氏)가 오랫동안 집성촌을 이룬 마을에는 30여 채의 옛집에 5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작은 마을이지만 인물이 많이 나왔다. 강골은 도계, 당촌, 박실마을과 함께 보성의 대표적 명문마을로 알려져 있다. 보성 사람들은 “강골 가서 벼슬 자랑하면 안 돼. 높은 양반들이 많이 나온 곳이다”고 말할 정도다. 고시 합격자가 여럿 되고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이 마을에서 태어나 공부했고, 6선을 한 이중재 전 국회의원과 2선의 이종구 전 의원 부자도 이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마을의 전통 가옥들은 대부분 1900년을 전후해 지은 집들이다. 이중 이용욱(李容郁) 가옥, 이금재(李錦載) 가옥, 이식래(李湜來) 가옥, 열화정(悅話亭) 등 3채의 가옥과 1개의 정자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다. 강골마을은 호남지역에서 처음으로 국가기록원 제5호 기록사랑마을로 지정돼 있다. 마을에는 지난 100여 년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원암공유묵(토지의 평수를 기록한 문서로 1899년 제작 추정)과 소작료 장부, 농사일기를 비롯해 1800년대 말부터 마을에서 주고받았던 편지, 공립중학교 졸업장, 1960~1980년대 교과서와 잡지, 앨범, 선거 자료 등 마을기록물 5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강골마을은 여느 민속마을과는 다르다. 7,8년 전 정부와 군청에서는 수십 동의 한옥을 새로 짓고 박물관에 저잣거리까지 갖춘 민속마을로 번듯하게 만들어보자며 300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마을에서는 이를 거절했다. 혹여 민속마을로 개발되면 마을 전체가 기와집과 초가집만 즐비한 허울뿐인 전통마을이 될까 걱정해서다. 관광지가 돼 매표소가 생겨나고 각종 편의시설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도 원치 않았다. 시골다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겠다는 옹고집이 마구잡이 개발을 막아냈다.
이정민(53) 강골마을정보센터장은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과는 다른 맛과 멋과 정신이 있는 전통을 이어가고 싶었다”며 “박제화된 전통마을, 장삿속만 남고 공동체가 사라진 민속마을의 전철을 강골마을만큼은 밟지 않겠다는 고집으로 마을을 지켜가고 있다”고 했다.
강골마을이 체험객들에게 내세우는 건 ‘시골에서의 불편한 하룻밤’이다. 옛집에서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우물물을 길어 씻고 직접 군불도 땐다. 밤마실을 나가 이웃을 만나고 주인집 식구들과 함께 소박한 아침밥을 먹으면서 시골의 정겨움을 느낀다.
마을의 ‘두 그루 철쭉제’ 사연도 재미있다. 언젠 가 마을을 찾았던 대학생들이 “볼 게 없다”며 시큰둥하길래 이들을 데리고 나와 마당에서 축제를 하자고 제안했단다. 두 그루의 연산홍 앞에서 펼쳐진 철쭉제다. 학생들은 어이없어 했지만, 꽃축제에 꼭 대단히 많은 꽃이 필요한 것도, 짜여진 일정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니 꽃 한 송이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재미있는 축제를 만들어보자며 시작했단다. 이후 매년 마을에선 두 그루 철쭉제가 열렸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과 밤새 막걸리를 나누고 공연을 펼치며 신명 나는 하룻밤 난장을 열어가고 있다.
겨울이면 마을 할머니들은 이웃집에 도란도란 모여 엿을 만들어 판매한다. 전통방식 그대로 정성을 다해 만든 강골마을 엿은 이젠 제법 소문이 나 주문을 다 소화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강골마을은 겨울철에 멀리서 오는 손님에게 가장 귀한 음식으로 엿을 내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전통이 머지않아 끝나지 않을까 강골마을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70, 80을 넘은 노인들인데다가 가옥을 팔고 마을을 떠나는 주민도 생기고, 마을이 유명해지면서 외지인의 출입이 너무 잦아지다 보니 마을의 분위기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근 3,4년 사이 외지인과 수십 년간 떠나있었던 후손들이 마을에 터를 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외지인과 귀향한 사람들은 강골마을의 역사와 특징을 잘 모르는데다, 왜 이 마을의 전통이 지켜져야 하는지 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염려스럽다고 했다. 최근 마을에는 전체 분위기와 동떨어진 현대식 조립식 건물이 들어서기도 했다. 또 마을의 일부 노인분들도 싸리 울타리나 돌담,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길 보다 번듯한 콘크리트 담벼락이나 신작로가 더 좋지 않냐며 전통을 유지하는 것을 내키지 않아하기도 한다. 고집스러운 강골마을도 앞으로 계속 전통을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진다.
이정민 정보센터장은 “촌놈은 촌놈다워야 하고 시골은 시골다워야 한다. 과거든 현재든 지나 온 과정은 모두 소중하다”며 “강골마을만큼은 소박한 삶과 자연의 냄새가 나고, 강골다운 가치를 지켜가는 마을로 남겨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보성= 글ㆍ사진 하태민기자 ham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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