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막무가내로 그들을 밀어내었다. 온갖 책략을 동원해서 그들을 쫓아낸 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음흉한 작별을 고했다. 달리는 트럭의 짐칸에 실려서 그는 부천시의 인사를 받았다. 어서 오십시오…”(양귀자의 소설집 ‘원미동 사람들’ 속 단편 ‘멀고 아름다운 동네’ 중)
1980년대 부천시는 밀려난 자들의 도시였고 서울이라는 중심을 향해 설욕을 다짐하는 패자의 공간이었다. 서울을 생활 터전으로 삼으면서도 서울시민이 아닌 자들이 어쩔 수 없이 모이는 곳이었다. 부천시의 유동성과 변두리성, 서민 정서는 소설가 양귀자의 소설집 ‘원미동 사람들’에 투영됐다. 원미동 사람들의 일상으로 경제개발의 그늘에 놓였던 소시민들의 삶을 전했다. 80년대 부천이라는 공간이 지녔던 시대성이 드러난다.
80년대는 억압의 시대였다. 정통성을 잃은 정권은 경찰 등 ‘기관’에 기대 권력을 지키려 했다. 기관은 고문을 충성을 위한 기술로 활용했다.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으로 정권의 흉측한 맨 얼굴이 드러났다. 김근태 전 국회의원도 고문의 대표적인 피해자였다. 고문기술자 이근안 경감이 국가폭력의 대리인이었다. 김 의원에게 가했던 고문의 실상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남영동 1985’(감독 정지영)에서 그대로 그려졌다. 김 의원을 향한 국가 폭력은 만화가 박건웅씨의 최근작 그래픽 노블 ‘짐승의 시간’에서도 자세히 묘사됐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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