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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시속을 따르지 않는 뜻

입력
2014.07.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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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올바르게 살고자 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문제를 두고 조선 중기의 학자 조익(趙翼)은 군중심리 때문에 바르게 살려고 마음을 먹는 사람들조차도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모두 이익을 좇아가는데 나 혼자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면, 사람들은 모두 이익을 얻지만 나만 얻는 것이 없어 끝내 크게 곤궁해질 것이다. 이것이 겁이 난다. 어찌 사람들과 어긋나게 행동하여 혼자 남들 하지 않는 것을 한단 말인가? 이는 성인과 현자들이나 하는 일이지 사람들마다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니, 어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이를 보면 요즘 사람들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조선 후기의 학자 송문흠(宋文欽)은 이 문제를 자세히 따지기 위해 ‘시속(時俗)과 반대로 사는 일(反俗)’이라는 글을 지었다. 당시에도 사람들은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은 괴(怪ㆍ튀는 짓)요, 남들이 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노(勞ㆍ생고생)다. 시속을 따르면 편하고 출세하는데, 밖으로 그들과 조화를 이루고 안으로 마음에서 지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스려 실천에 옮기는 것이 군자, 곧 지도자의 도리다. 군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실질에 뜻을 두어 허위에 빠지지 않고, 의로움을 좇아서 구차하지 않으며, 남들이 천 번 만 번 변하더라도 나는 한결같은 한 마음을 지키면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을 버리고 오직 남이 하는 것만 따라 한다고 보았다. ‘한비자(韓非子)’에 ‘일빈일소(一?一笑)’라는 말이 나온다. 남이 찡그리면 따라 찡그리고 남이 웃으면 따라 웃는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사기(史記)’에 ‘종속부침(從俗浮沈) 여세부앙(與世俯仰)’이라는 말도 나온다. 시속을 따라 오르내리고 세사를 따라 내맡겨둔다는 뜻이다. 사마천(司馬遷)은 젊은 시절 자신이 이렇게 살다가 광혹(狂惑), 곧 미치광이 바보가 되었노라 후회하였다. 그러니 이렇게 사는 것이 오히려 생고생이요 튀는 짓이 아니겠는가, 송문흠이 반문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살면서도 군자가 될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비록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고 살지만 마음은 올곧음을 지키고 산다고 변명한다. 이에 대해 송문흠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그 허위의식을 비판했다. “남양의 바다에 나체로 사는 야만족이 있는데 그 나라에 들어가 그들처럼 옷을 벗고서 ‘내 마음 속에는 의관이 있다’고 하고, 파미르 고원 서쪽에 사창가가 있는데 그곳을 출입하면서 ‘내 마음 속에는 남녀유별의 예절이 있다’고 한다면 누가 그 말을 믿을 것인가?” 또 “천금의 보배가 있으면 반드시 궤짝에 감출 것이요 겹겹이 싸서 숨길 것이지만, 이를 시장에다 내다 버리고 사람들에게 ‘내가 궤짝을 버린 것일 뿐, 그 안의 보배는 내가 정말 지키고 있다’라고 한다고 해서 어찌 그 보배를 지킨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물었다.

고금을 막론하고 자신의 시대가 요순시절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언제나 세상은 혼탁하고 어지럽다. 그래도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 세상은 바르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남들이 하는 대로 살고자 하여 삶의 잣대를 적당히 조절해서는 곤란하다. 이런 점에서 당시에는 사문난적(斯文亂賊)의 비방을 받으면서도 남들 하는 대로 살지 않으려 했던 박세당(朴世堂)이 참으로 조선의 선비라 할 만하다. 자신의 무덤에 새긴 묘표(墓表)에서 “차라리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며 합치되는 바가 없이 살다 죽을지언정,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이 세상에 맞춰 살면서 남들이 잘한다고 말해 주기만 하면 된다고 여기는 그런 자들에게 끝내 고개를 숙이고 마음을 낮추지 않겠노라 스스로 생각했으니, 이는 내 뜻이 그러한 것이다”라고 한 말이 참으로 마음을 끈다. 이런 삶의 자세가 더욱 그리운 시대다.

이종묵 서울대 인문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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