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의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실력 위주의 선수 기용이 빠짐없이 꼽힌다. 당시 봇물처럼 쏟아진 히딩크 리더십 분석을 보면 축구계 양대 학맥인 고려대 연세대 출신 선수가 다른 감독 때보다 확 줄었다. 한일월드컵 이후 유럽 빅리그에 진출해 성공한 박지성이나 이영표 모두 연ㆍ고대 출신이 아니다. 한때 ‘오대영 감독’으로 불렸던 히딩크 감독의 안목이 남달랐다는 얘기다.
▦ 홍명보 감독도 첫 지휘봉을 잡았던 2009년 청소년 월드컵(20세 이하)에서 무명의 대학선수들로 18년 만에 8강 진출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스타 선수의 무임승차 논란을 말끔히 씻었다. 홍 감독은 여세를 몰아 이 선수들을 주축으로 2010년 아시안게임에 이어 2012년 런던올림픽 대표팀을 구성했다. 자신의 아이들만 챙긴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보란 듯이 숙적 일본을 꺾고 올림픽 첫 동메달의 쾌거를 이뤘다. ‘형님 리더십’ ‘혁신의 리더십’이라는 말이 나왔고, 선수들은 ‘황금세대’라는 칭찬을 들었다.
▦ 역시 홍명보의 아이들이 대거 포함된 브라질월드컵 대표팀 엔트리 발표 당시 인사 원칙이 없다는 말이 나왔다. 특히 소속팀에서 경기를 거의 뛰지 못한 박주영 윤석영 때문이다. 감독 부임 초 “소속팀에서 활약이 없으면 뽑지 않겠다”는 공언과 달라 시중의 유행어를 패러디 한 ‘엔트으~리(엔트리+의리)’라는 말을 낳았다. 즉 의리 논란이 빚어졌다. 1무 2패. 프랑스월드컵 이후 16년 만에 최악의 결과다. 귀국길엔 엿 사탕 세례도 받았다. 여론의 비난 속에 유임 결정이 났지만 결국 1주일만인 10일 불명예 퇴진했다. 월드컵 탈락이 확정된 벨기에전 뒤풀이 유흥 동영상과 월드컵 훈련 중 땅 매입이 공개된 게 결정타가 됐다.
▦ 젊은 나이에 그만한 성취, 드라마 같은 장면을 연출했던 감독이 없기에 안타깝다. 돌이켜보면 그의 실패 원인도 결국 인사에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런저런 말로 ‘엔트으~리’논란을 방어했지만 공허했다. 모르긴 몰라도 팀 분위기가 많이 흔들렸을 것이다. 히딩크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인재를 두루 살펴 ‘숨은 진주’를 찾아내는 리더십의 발전된 단계를 보였다면 어땠을까. 국가대표 감독이나 대통령이나 인사에서 실패하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