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수의 대도시들 중 한강처럼 풍성한 강줄기를 품은 곳은 그리 흔하지 않다. 한강은 분명 서울을 대표하는 명소가 될 수 있음에도 아직 그만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강의 시설이나 풍광이 매력적이지 못해서다.
그렇다면 한강을 품은 서울은 어떤가. 600년 도읍의 역사와 함께 북한산과 수락산, 아차산, 관악산 등 기암절경의 산세가 둘러싸고 있는 서울의 풍광은 분명 자랑할 만하다.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대도시가 국립공원으로 인정받은 산자락에 기대고 있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한강 변에 서면 그 풍요로운 서울의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끝없이 이어진 아파트의 장벽에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파리 세느강 유람선에선 박물관과 성당 등 고건축물과 그곳에 깃든 사연을 마주할 수 있지만, 한강 유람선에선 이 아파트는 몇 억 저 아파트는 몇 억 하는 가격 비교만 하게 된다. 또 아파트란 게 제아무리 멋을 부린들 건축적인 매력을 느끼기엔 힘든 건물이다.
한강에서 그나마 조금 시야가 뚫린 곳이 반포 구간이었는데, 이곳 또한 재건축이 추진된다고 하니 조만간 국립서울현충원 숲과 관악산으로 이어진 초록의 전망 또한 한강과 차단되고 말 것이다.
회사가 남산과 가까운 도심에 있지만 정작 남산을 보기는 쉽지 않다. 빌딩들이 산을 빼곡하게 둘러싸며 점점 더 남산을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남산 자락을 힘겹게 한참 올라서야 겨우 초록의 능선을 눈에 담을 수 있다. 한강이 강변 아파트 주민들에게 독점 당하고 남산이 주변 빌딩 주인들만의 정원으로 전락하면서, 시민들은 서울 한복판인 한강에서 서울을 바라볼 수 없게 됐고 남산 바로 밑에서 남산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지방의 역사가 오랜 어느 도시를 여행했을 때다. 도심과 성벽을 휘돌아가는 물줄기와 주변의 산세가 어우러진 전경에 감탄하다가 그 풍경의 정점에 홀로 우뚝 솟은 아파트 때문에 눈을 찌푸린 적이 있다. 저 건물만 없으면 완벽한 구도였는데 하는 아쉬움을 삼키며 카메라를 내려 놓을 때 안내했던 현지인이 저 아파트에서 바라보면 전망이 정말 끝내준다고 귀띔했다. 땅주인이 기막힌 전경을 얻기 위해 건물을 올리는 대신 나머지 사람들은 그 흠집 난 풍경에 기가 막혀야 하는 것이다.
최근 판교신도시에 들어선 단독주택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새로운 건축의 시험장인듯 제각각 다양한 모양의 건물들이 맵시를 뽐냈다. 하나 둘 특이한 외관의 주택들이 들어설 때는 참 멋지다 생각했지만, 이제 얼추 단독택지가 다 들어차고 있는 지금은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할당된 자기 필지를 꽉 채워가며 욕심껏 최대로 짓다 보니 집들은 옆집과 다닥다닥 붙고 말았다. 한껏 멋을 부려 지은 건물이지만 양 옆면이 이웃집에 가려진 탓에, 3차원의 건축미는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다. 비움의 여유를 상실한 그 건물들에서 오로지 용적률, 건폐율의 최대치 실현이란 목적으로 ‘집의 미학’을 저만치 던져놓았던 다세대건물들이 오버랩 됐다. 지난 20~30년 간 서울의 주택가를 깡그리 잠식해버린 국적불명, 유래불명의 건축물 말이다.
밀집된 거주공간은 대자연 속 별의 기운을 마시며 하룻밤을 보내겠다고 떠난 캠핑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더 가깝게 하기 위해 텐트 세우는 간격을 아주 멀리 한다”는 베두인의 격언(매슈 드 어베이투어의 ‘캠핑이란 무엇인가’ 중에서)과 달리, 우리의 캠핑장들은 옆 텐트의 은밀한 소리를 억지로 들어가며 밤새 서로를 분노케 하기 위해서인지 최대한 가깝게 밀집시켜 놓았다. 용적률, 건폐율 제한도 없는 뻥 뚫린 야외 공간인데 좀 여유 있게 떨어뜨려놓으면 안되는 것인지. 캠핑장이 아니라 난민촌이란 소리가 나오든 말든 텐트 한 동이라도 늘려 돈 몇 푼 더 벌겠다는 욕심 때문이다.
한 치의 공간도 낭비해선 안 된다는 강박이 우리를 질식하게 만들고 있다. 더 높게 치솟는 욕망이 우리의 소중한 풍경을 빼앗아가고 있다.
이성원 사회부 차장대우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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