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압파쇄공법 부작용
암석 깰 때 쓰는 화학 물질 호르몬 교란·지진 촉발 주장, 美법원·獨정부 개발 규제 나서
셰일가스 개발의 정치학
러시아 천연가스 패권 견제 수단, 유럽 에너지 안보 위해 개발 필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 경제를 부흥시킬 새로운 동력원으로 지목한 ‘셰일 혁명’이 작지만 중대 고비를 맞기 시작했다. ‘셰일’이라고 불리는 퇴적암에서 천연가스를 거의 무한정 뽑아낼 수 있다는 믿기지 않은 장점에 묻혔던 부작용이 잇따라 부각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셰일 개발업자들의 행보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셰일 혁명을 통해 러시아 ‘달러박스’인 전통 천연가스 산업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뚜렷해지면서, 미ㆍ러 양국의 정치적 음모설도 제기되고 있다.
11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만년 원유 수입국이던 미국을 수출국으로 탈바꿈시킨 셰일 가스 개발을 둘러싸고 강력한 반대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우선 미국에서는 지방자치단체에 무분별한 개발을 중단시킬 권리를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계속되고 있다.
뉴욕주 최고법원은 최근 셰일가스 채굴 방법인 ‘수압파쇄’기법을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금지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수압파쇄는 천연가스를 저장하고 있는 셰일 암석을 깨기 위해 물과 화학물질을 흘려 보내는 방법인데, 환경단체는 지하수 오염 등을 이유로 반대해 왔다. 월스트리저널은 뉴욕주 북부 소도시인 드라이든과 미들필드가 내린 수압파쇄 금지 조치에 반발해 천연가스 개발업체와 토지소유주가 제기한 소송이 1심 법원에 이어 2심 법원에서도 모두 기각됐다고 보도했다. 뉴욕주 법원 판결은 펜실베니아주에 이어 미국에서는 두 번째로 나온 것으로, 이 신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셰일가스가 매장된 ‘마셀루스 셰일층’ 개발에 제동이 걸렸다고 평가했다.
독일 정부도 이달 초 지하수 오염 가능성을 이유로 셰일가스 개발을 사실상 금지하는 규제 방안을 내놓았다. 바바라 헨드릭스 독일 환경부 장관은 “앞으로 7년 동안 깊이 3,000m 미만 셰일층에서의 가스 채굴이 금지된다”고 선언했다. 그는 “마실 물과 건강을 보호하는 것은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라고 덧붙였다. 독일 정부는 이 규정을 내년 초부터 시행할 방침이며, 이 규제 시한이 종료되는 2021년에도 수압파쇄 기법의 영향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토대로 연장 가능성을 검토할 방침이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미국과 독일에서 셰일가스 개발에 제동을 건 조치가 나온 것은 ‘수압파쇄에 사용된 화학 물질이 인체에 유해하고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이 실제로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셰일가스 개발이 지진까지 일으킨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미국 최대 셰일가스 생산지인 노스다코타주에서는 주택 인근 연못이 타오르고, 수돗물에 불이 붙는 현상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관련 피해로 분쟁을 겪고 있는 바니타 베스트씨는 “현관문 바로 앞 웅덩이가 거의 1년 째 타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셰일가스 개발과정에서 나온 천연가스와 화학물질이 암석층 균열을 통해 식수로 이용되는 지하수층까지 오염시켰다는 결정적 증거이다.
지금까지 논란 수준에 머물렀던 수압파쇄 공법 화학물질의 유해성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미국 사이언스월드리포트에 따르면 수압파쇄에 사용된 화학약품은 인체 호르몬 시스템을 교란하는데, 특히 갑상선 호르몬 수용체를 비롯해 건강 유지에 필수적인 당질코르티코이드 분비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리스토퍼 카소티스 박사는 “수압파쇄에 자주 쓰이는 화학품 24개를 시험한 결과, 20개가 여성호르몬 수용체를 막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화학품들에 노출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전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체내 분해능력이 없는 영유아들이 가장 취약한 집단인 것은 사실”이라고 우려했다.
수압파쇄가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에도 영향을 준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지난해 이후 오클라호마주에서 규모 3.0 이상 지진이 급증하고 있으며, 이는 셰일가스 채취를 위한 무리한 개발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오클라호마주에서는 2009년 이전 30년 동안 지진 발생이 연간 2차례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09차례에 달했고, 올 들어서는 이미 200회를 넘어섰다. 오클라호마주 지질조사국의 지진학자 오스틴 홀랜드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09년 지질조사국에 취직할 때 ‘지진학자로는 따분한 직장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전혀 딴판이 됐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오클라호마주에서 크게 늘어난 셰일가스 채굴이 지진 급증의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암석 틈새로 높은 압력으로 물을 쏘아 가스를 추출하는 수압파쇄공법이 단층을 자극해 지진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도 미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게재한 관련 연구논문에서 “셰일가스 채굴에서 발생한 대량의 폐수가 땅 속에 버려진 뒤, 이 폐수가 윤활유 역할을 해 암반으로 스며들어 단층을 움직이기 쉽게 했다”고 분석했다. 또 “지진범위가 폐수 우물에서 30㎞이상 떨어진 곳까지 확대됐으며, 앞으로 진도 6이 넘는 지진이 주도(州都) 오클라호마시티를 강타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셰일가스 개발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잇따르자, 개발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보다 장기적이고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영국 화학공학자협회(IChemE) 죠프 메이트랜드 회장은 ‘영국 셰일가스의 미래’토론회에서 “모든 이해관계자들은 사실에 근거하고 균형 잡힌 시각에서 셰일가스 개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단체가 주장하는 문제점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장기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하면 셰일가스를 개발하는 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메이트랜드 회장은 “개발 반대론자들은 지역이기주의와 개발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조장, 셰일가스 개발이 공동체 전체에 가져 올 이익을 외면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셰일가스를 적절히 개발하면 영국에서만 230억파운드(40조원)의 투자 유발효과와 6만4,000개의 일자리가 생겨날 뿐만 아니라,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탄 수요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방이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는 만큼, 이 문제를 안보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셰일가스 개발은 천연가스 공급망을 통해 서유럽을 견제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위상을 허무는 강력한 수단인 만큼 다소 부작용은 감내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실제로 영국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은 최근 영국 국제관계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 초청 연설에서 “러시아 정부가 셰일가스 개발에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정교한 선전작전의 일환으로 유럽이 러시아 가스 수입에 계속 의존하도록 셰일가스 개발에 반대하는 소위 비정부 기구(환경단체)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발언이 동맹국들의 정보 보고를 기반으로 한 ‘해석’이라며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라스무센은 또 유럽의 에너지 안보를 증대시키기 위해 셰일가스 개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분리주의를 조장하는 것과 관련, 이 지역 셰일가스 개발을 방해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지난해 영국 석유업체 로열더치셸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유즈브스카의 8,000㎢ 규모 면적에서 셰일가스를 개발하는 내용의 협정을 우크라이나 정부와 맺기도 했다.
박경균 인턴기자ㆍ서울시립대 영어영문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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