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4명 중 64%가 직업적 노출
폐암 투병 등 고통 받지만
폐업 탓 서류 없어 인정 못 받아
전남 여수에서 사는 정모(61)씨는 2006년 석면 흡입으로 폐에 발병하는 암인 악성중피종 진단을 받았다. 20대이던 1978~84년 석면원료로 석유난로 심지를 만드는 회사와 1986년 석면건축자재를 취급하는 건설현장에서 근무한 게 원인이었다. 석면 질환의 잠복기는 10~40년이다.
항암치료만 21차례 받으며 투병하던 그는 2012년에야 석면피해구제 인정을 받았다. 직업으로 인한 노출 피해가 분명했지만 아직까지 산업재해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정씨는 “근무한 회사가 문을 닫아 직업피해를 증빙할 서류를 마련할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정부로부터 받은 환경구제금은 산업재해보험금의 10~30% 수준에 불과하다.
정씨처럼 정부가 직업노출로 인한 피해자로 인정한 석면 피해자 중 64%는 산업재해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때문에 이들을 구제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9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환경부로부터 받은 ‘석면피해구제법 인정자의 환경ㆍ직업 노출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이 법이 시행된 2011년 이후부터 올해 3월까지 총 1,344명이 피해 인정을 받았다. 이들 중 직업으로 인한 노출 피해(493명)와 환경 및 직업 노출로 인한 피해(370명)로 구분된 사람은 863명(64.2%)에 달한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장은 “정부도 이들의 피해가 사업장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피해자 대다수가 별도의 계약 없이 일용직으로 일했거나 과거 근무한 광산ㆍ석면기업의 폐업으로 증빙 서류를 제출하기 어려워 산업재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석면질환의 잠복기와 2009년 신규 석면 사용 전면금지로 자취를 감춘 석면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이들에게도 산업재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석면피해 인정률이 해마다 낮아져 인정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석면피해 인정률은 2011년 65.5%에서 올해 상반기(1~6월 기준) 50%로 15.5%포인트 하락했다. 대표적인 석면 질환인 악성중피종의 피해 인정률은 평균 71%에 머물렀고, 올해 상반기의 경우 폐암 인정률은 17.5%에 그쳤다.
최예용 센터장은 “피해 인정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굉장히 큰 문제로, 피해 인정기준을 너무 엄격히 적용하는 것은 아닌지 정부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환경보건관리과 관계자는 “제도 시행 초기 석면질환을 앓던 분들은 이미 피해 인정을 거의 다 받았기 때문에 갈수록 인정률이 하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1년부터 올해 6월까지 피해인정을 받은 석면 피해자는 총 1,426명(생존 902명ㆍ사망 524명)이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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