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이토에게 쓴 애타는 연서
1921년 약혼했다 돌연 파혼 당해 "잠도 안오고... 죽는 것이 낫겠다"
절절한 심경을 담은 편지 등 발견
죽음도 극적인 소설같은 인생
노벨상 수상 4년 뒤인 1972년 후지산 보이는 집에서 가스 자살
소설 ‘설국(雪國)’으로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1899~1972ㆍ사진)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을 담은 편지가 발견됐다.
9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가와바타가 약혼까지 했다가 파혼한 ‘첫사랑’ 이토 하쓰요(伊藤初代·1906~1951ㆍ사진)에게 써놓고 부치지 못한 편지 1통과 이토로부터 받은 10여통의 편지가 가나가와(神奈川)현의 가와바타 자택에서 최근 발견됐다.
가와바타는 20살이던 1919년 도쿄의 카페에서 일하던 이토를 만나 1921년 약혼했으나 돌연 이토로부터 “어떤 비상(非常)이 있다”는 말만 들은 채 파혼당했다. 파혼통보를 받은 직후 썼으나 부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가와바타의 편지에서는 “병이 난 것 아닌가 생각하니 밤에도 잘 수 없다” “울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쓰인다”는 등 절절한 심정이 담겼다. 또 이토가 가와바타에게 보낸 편지에는 “어떤 문제 때문에 파혼하려 하느냐”는 가와바타의 애타는 물음에 “그것을 말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며 완강하게 거부하는 내용 등이 적혀있다.
이토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은 ‘이즈의 무희(伊豆の踊子)’ 등 가와바타의 초기 작품에 영향을 줬다고 아사히 신문은 소개했다. 또 단편 ‘비상(非常)’에 이토로부터 받은 편지를 인용한 대목이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확인됐다. 이들 편지 중 일부는 16일부터 오카야마(岡山) 현립 미술관에서 공개된다.
가와바타는 오사카의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네 살이 되기 전 부모를 잃고, 백내장으로 시력을 상실한 할아버지와 함께 어둡고 고독한 성장기를 보냈다. 사랑 결핍과 고독, 싸늘하고 허무한 세계관은 그때 형성됐다. 초기에는 허무한 슬픔과 서정성이 넘치는 작품을 많이 썼으나 이후 비현실적인 미의 세계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며 대표작인 ‘설국’을 발표하게 됐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로 시작되는 설국의 첫 문장은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입부로 평가받는다. 가와바타는 설국의 무대인 니가타현의 산중 온천마을인 유자와(湯澤)정에 4년 가까이 머물며 소설을 완성했다. 그는 주로 객지의 료칸(旅館)에서 맞닥뜨린 사건과 정취, 소회를 소설로 표현했다. ‘설국’의 주인공 시마무라 또한 그의 분신이다. 그는 시마무라를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었다.
소설 같은 인생을 산 그는 죽음도 극적이었다. 노벨상 수상 4년 뒤인 1972년 후지산이 보이는 집에서 유서 없이 가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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