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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샤넬 N°5의 위기

입력
2014.07.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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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의 역사는 인류사와 궤를 같이 한다. 원시시대에 인간들은 종교의식을 통해 신에 다가갈 때 몸을 청결히 하고 향나무 잎으로 즙을 내 바르며, 향기 나는 나뭇가지를 태웠다고 한다. 향수를 뜻하는 영 단어 퍼퓸(perfume)은 연기를 통한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일찍부터 향료 제조에 풍부한 지식을 갖고, 종교의식이나 미이라 제작, 목욕 등에 다양한 향료를 사용했다. 클레오파트라 시대에는 계피, 몰약, 송진, 벌꿀 등을 조합해 ‘키피’라는 향료를 만들었는데, 이게 인류 최초의 조합향료로 알려져 있다.

▦ 중세 이후 증류법, 용매추출법 등 향 성분 추출법이 개발되고 근대 들어 화학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향수산업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됐다. 그 동안 향수산업의 주도권은 이탈리아 피렌체를 거쳐 18세기 이후 프랑스로 넘어갔다. 1921년 프랑스 샤넬사가 출시한 샤넬 N°5는 여성 향수의 대명사가 되어 프랑스의 향수산업 종주국 지위를 한층 굳혀주었다. 당대 최고 섹시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잠자리에 들 때 걸치는 것은 샤넬 N°5 뿐”이라고 한 얘기는 야릇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며 샤넬 N°5의 성가를 가히 전설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 그런 샤넬 N°5가 고유한 향을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 향수의 일부 성분이 소비자에게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이런 성분을 향수 제조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금지 대상은 독특한 나무 향을 내는 참나무이끼 추출물 ‘아트라놀’과 ‘클로아트라놀’ 그리고 은방울꽃 향을 내는 합성물질 ‘HICC’ 등이다. 이중 아트라놀이 샤넬 N°5의 독특한 잔향을 내는 성분이다. 이 성분은 ‘미스 디오르’ 등 다른 유명 향수에도 사용된다. EU집행위가 발의한 규제안이 최근 공청회를 통과해 이르면 연말부터 관련 물질 사용이 전면 금지될 전망이다.

▦ 그렇게 되면 샤넬 N°5의 제조법 변경이 불가피하다. 샤넬은 해조류 등에서 대체 성분을 추출해 사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으나 고유 향이 유지될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이런 규제 움직임은 ‘안전한 화장품 캠페인’이라는 환경운동단체의 활동에서 비롯됐다. 이 단체는 샤넬 등 세계 17개 유명 향수 브랜드를 조사해 성분표시가 안된 38가지 화학성분 중 일부가 사용자의 호르몬을 교란하거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고 폭로했다. 천하의 샤넬이라도 소비자의 안전을 소홀히 하면 신뢰를 잃는 건 하루아침이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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