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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전 '마라카낭 참사' 씻으려다 혹만 더 붙여

입력
2014.07.0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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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대회 결승서 져 관중 4명 사망

이번엔 준결승 탈락 '미네이랑 비극'

“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 때문에 50년 간이나 벌을 받아야 했다.”

2000년 세상을 떠난 모아시르 바르보사는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브라질 최초의 흑인 골키퍼로서 명성이 높았지만 1950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바르보사는 당시 우루과이와의 최종전에서 1-1로 맞선 경기 종료 10분 전 결승골을 얻어 맞았다. 상대 공격수 알키데스 기히아의 공을 쳐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공은 골문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는 다시는 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형수 집에서 얹혀 살며 불우한 말년을 보낸 바르보사는 “브라질에서 최고 형벌은 징역 30년이다. 나는 그 보다 더 벌을 받았다”고 죽기 직전까지 억울해 했다. 그의 자서전을 쓴 작가는 기히아의 슈팅 상황을 “마치 케네디 대통령 암살 장면처럼 느껴졌다”고 묘사했다. 이른바 ‘마라카낭 참사’다. 우루과이와 비기기만 해도 우승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던 브라질이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단 10분을 지키지 못하면서 비극이 벌어졌다.

희생양은 바르보사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선수들도 더 이상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고 고유의 흰색 유니폼은 지금의 노란색 상의로 아예 바뀌었다.

특히 4명의 관중이 그 자리에서 사망해 사태가 일파만파 커졌다. 2명은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2명은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실신한 관중은 20여 명. 우승 팀 우루과이 선수들도 시상식 조차 제대로 못한 채 황급히 경기장을 빠져나가야 했다. 이후 브라질 전국에 조기가 게양됐고 폭동이 이어졌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은 삼바 축구가 ‘마라카낭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선수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결승전 장소도 하필 마라카낭 경기장이었다. 선수들은 이곳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려 64년 전의 ‘트라우마’를 지우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마라카낭에 입성하기도 전에 브라질은 ‘미네이랑 비극’에 통곡해야 했다. 독일과의 준결승전 1-7 참패다. 1950년 브라질의 심장이 멈췄다면 이번에는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졌다는 표현이 제격이다. 목숨을 끊거나 실신한 축구 팬은 없었지만 5만1,000여명의 관중은 비통함과 억울함에 눈물을 쏟았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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