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의 대립은 세계의 재난이 될 것이다, 천하를 함께 구제하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베이징을 비밀 방문한 지 꼭 43주년이 되는 날 미국을 향해 한 말이다. 달라진 중국의 위상과 국제 정세의 변화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며 세계 공동 경영의 뜻을 드러낸 것이어서 주목된다. 연례 정책 협의 틀인 미중 전략경제대화는 첫날부터 팽팽한 기 싸움 속에서 서로의 입장 차를 확인했다. 그러나 양국 모두 판 자체를 깨진 않으려고 애 썼다.
시 주석은 9일 베이징의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열린 제6차 미중 전략경제대화 및 제5차 고위인적교류회담 공동 개막식에 참석, “1979년 수교 이후 35년 동안의 양국 간 역사와 현실은 양국이 협력하면 이롭지만 다투면 서로 상처만 입는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며 “태평양의 광활함은 두 대국을 모두 포용하기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양국 관계의 발전은 시대와 정세의 변화에 따라 함께 나아가야 한다”며 “대국(大國) 간 충돌과 대결의 전통적 규칙을 깨고 ‘신형대국관계’라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자”고 주문했다. 시 주석은 “양국간 고난과 곡절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며 문제가 있어도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며 “중요한 건 문제를 풀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야지, 문제에 코가 꿰여 끌려 가선 안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서로 상대방의 주권과 영토의 보존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신의 의지나 방식을 상대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전략경제대화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미국은 안정적이며 평화롭고 번영하는 중국의 출현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는 “역사와 문화가 다른 두 나라가 모든 사안에서 의견이 같을 순 없는 일”이라며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다름을 솔직하게 얘기하면서도 공동의 도전과 상호 책임, 공동 이익 등에 대한 탄력 있고 협력적인 관계를 건설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미국은 중국을 억누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국은 첫날 전략경제대화에서 한반도 비핵화, 이란 핵 개발, 아프가니스탄 사태, 동중국해ㆍ남중국해 영유권, 사이버 해킹 등에 대한 양측의 입장을 확인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또 위안화 평가 절상과 양자투자협정, 중국 금융시장개방 문제 등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중국은 특히 일본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미국의 동참을 촉구했다. 팡펑후이(房峰輝)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은 전날 전략경제대화 참석차 방중한 사무엘 록클리어 미군 태평양 사령관을 만난 자리에서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팡 총참모장은 중일전쟁을 촉발한 7ㆍ7 루거우차오(蘆溝橋) 사건 77주년 기념식이 열린 사실을 소개한 뒤 “역사를 돌아보고 깊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며 “우리는 일본 군국주의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 위험을 경계해야 하며, 지역 및 세계 평화를 공동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중 관계가 쉽지 않은 국면인 만큼 새로운 방해 요인이 늘어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록클리어 사령관은 “멀리 보며 양국간 불일치를 잘 관리하자”고 답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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