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자위권 때문에 떨어진 지지율 납북자 문제 해결로 회복 노려
北 도발 계속 땐 외교 고립 가능성, 언급 자제하던 美도 선 긋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3일 역대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북한 방문에 앞서 한국을 방문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북한에 대한 독자 제재를 풀겠다고 발표했다.
시 주석이 전통적으로 밀월관계를 유지해온 북한의 지도자를 만나기 앞서 한국을 방문하고, 아베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 한중 양국 정상과 제대로 된 회담조차 가지지 못한 채 북한에 손을 내민 두 사건은 최근 동북아를 둘러싼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임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다.
아베 총리가 한국과 중국을 제쳐두고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섬으로써 진척 과정에 따라 한국의 대외정책은 물론, 동북아 전체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예상되는 시나리오에 대한 철저한 대비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북일 관계 진척, 내친 김에 국교정상화까지
아베 총리가 핵, 미사일을 둘러싼 대북문제에서 한미일 공조체제를 취하던 것과는 달리 북한과 관계 개선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집단적 자위권 용인을 둘러싼 헌법해석 변경을 각의 결정하면서 급락중인 국내 지지율을 회복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일본 내에서 납북 피해자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전범국가 일본이라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서의 동정심에 기대는 바가 크다. 아베 총리의 머리 속에는 이 같은 국민 정서를 자극, 납치 피해자 문제를 제대로 해결한다면 떨어진 지지율을 회복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계산이 깔려있다.
북한은 지난 1, 2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외무성 국장급 협의에서 북한이 납치자 문제 재조사를 위해 설립하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직속기관에 두겠다고 일본에 약속했다. 납치자 문제 해결에 북한이 성의를 보였다고 판단한 아베 총리는 3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간부의 북한 왕래 ▦대북 송금 완화 ▦인도적 차원의 북한 선박 일본 입항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고, 하루만인 4일부터 효력이 발동할 수 있도록 각의 결정까지 하는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북한도 이날 조치로 일본에서 외화 조달이 가능해져 경제적인 숨통이 다소 트였다는 후문이다.
아베 총리가 내친 김에 방북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별조사위원회의 1차 조사보고서가 나오는 8월 말~9월 초 이후 아베 총리가 직접 북한을 방문, 납치 피해자를 데리고 귀국할 경우 지지율 반등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교 관계자는 “아베 총리는 자신의 정치적 스승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2002년 방북 당시 작성한 평양선언에 등장하는 북일 국교정상화까지 실현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며 “북일 국교정상화가 이뤄진다면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말했다.
북한도 적극적이다. 핵, 미사일 실험 등으로 유엔은 물론 전세계에서 제재를 받는 북한으로서는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이는 대신 적지 않은 경제적 대가를 기대할 수 있다. 북한은 국교정상화와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를 한 묶음으로 빅딜하면서 수백조원을 일본에 요구하고 있다는 소문도 흘러 나오고 있다. 북한이 경제지원 문제로 일본과 과사 빅딜에 나설 경우 한국 정부의 대일 외교가 더욱 꼬일 가능성도 점쳐진다.
북일관계 개선 난망, 아베 역풍 불 수도
반면 북일 관계가 아베 총리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이 납치 피해자 문제와는 별개로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지속할 경우 아베 총리가 외교적 고립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9일 동해안 미사일 발사에 대해 일본 정부는 베이징 외교 경로를 통해 항의하는 수준에 그쳤다. 일본은 향후 북한이 핵실험 등 강도 높은 군사위협적 행동에 나설 것에 극도로 민감한 분위기다.
지금까지 납치 피해자 문제는 인도적 차원이라며 애써 언급을 자제하던 미국도 일본의 일탈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이 일본인 납치문제를 둘러싼 북일 정부간 협의에 대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문제를 의제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납치 문제가 진전돼도 유엔 안보리 결의에 근거한 제재는 해제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납치자 문제와 핵, 미사일 문제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며 “문제 해결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아베 정권의 지지율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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