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납니다. 직원들은 정이 많고 부지런한 상사로 기억하는 반면, 때때로 국민의 심기를 어지럽혀 입길에 올랐던 그는 요란한 작별인사도 없이 영상편지만 띄우고 갑니다. 그래도 덕분에 경제가 좀 나아졌다는 호평과 무능하다는 혹평이 엇갈렸던, 박근혜 정부 1기 경제팀의 수장은 ‘절반의 성공’이라는 세간의 넉넉한 평가에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기재부 내부 통신망에 영상메시지를 올렸습니다. 점심은 기재부의 세종 이전으로 주말 부부가 된 직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최경환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마무리되면서 자연인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 것입니다. 7일 촬영한 영상에는 자신의 임기 동안 수고해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새 부총리와 더불어 경기 회복의 동력을 잘 살려달라는 당부가 담겨있습니다. 이임식을 영상편지로 갈음한 것입니다.
부처 장관이 이임식을 하지 않는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는 “딱딱한 분위기로 격식을 갖추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는 작년 3월 취임식도 ‘직원들과의 대화’ 형식으로 바꾼 바 있습니다. 기재부 공무원들은 그것이 “현오석 스타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교체가 확실한 상황에서도 1급 간부회의를 새로 만들고 주말에도 쉬지 않는가 하면 민생 현장 방문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떠나는 순간까지 일을 놓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재임기간 0%대 성장을 탈출하고, 월간 취업자 수가 80만명을 넘어서는 등 우리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 국면에 들어선 건 현 부총리의 성실함, 소통리더십 덕분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하지만 월급쟁이들의 공분을 샀던 지난해 세법 개정, “우리가 다 정보 제공에 동의해줬지 않느냐”는 말실수로 질타를 받았던 카드 정보 유출 사태, 대통령의 뜻을 읽지 못해 대폭 수정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오락가락 정책으로 혼선만 부추긴 임대소득 과세 방안 등은 어쩔 수 없이 현 부총리의 과오로 기록될 것입니다.
업무 외 자리에서 만난 그는 참 따뜻한 사람입니다. 허리디스크에 시달리는 기자에게 자신이 다니는 한의원을 친절히 알려주는가 하면, 직원들이 농구하는 자리에 가끔 참석해 함께 땀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의 농구 유니폼 등 번호는 ‘07’입니다. 자신이 주창한 ‘퀀텀 점프’(Quantum-Jumpㆍ대도약)의 영문 앞 글자랑 비슷한 숫자로 만든 것인데요. 비록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의 악평에도 시달렸지만 열심히 일한 당신, 자신의 바람처럼 당분간 푹 쉬시길 바랍니다.
세종=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