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값 현금으로 받고 자신 카드로 결제 후 취소
손모(31)씨는 야식 배달로 3년 3개월간 7,000만원을 넘게 벌었다. 주문이 몰리는 주말에만 주 1, 2회 아르바이트를 한 대가다. 이 엄청난 아르바이트 수입 중 일당(8만원)으로 받은 것은 2,000여만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5,000만원은 기가 막힌 수법을 동원해 빼돌린 돈이었다.
2009년 여름 손씨는 모집 광고를 보고 서울 도봉구의 야식 배달업체에 들어갔다. 배달원이 8명이나 될 정도로 제법 규모가 큰 업체였다.
2010년 7월 손씨는 부수입을 올릴 기발한 수법을 생각해냈다. 휴대용 카드결제기에 자신의 카드로 음식값을 결제해 나온 영수증을 사장에게 준 뒤 결제 취소를 하는 것이다. 손님에게 받은 현금은 그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족발 대(大)자 4만원, 피자 1만5,000원…. 하루 서너 건 이상 카드만 긁으면 10만원 넘는 부수입을 챙길 수 있었다. 그는 지난해 10월까지 이런 수법으로 무려 1,700여 차례에 걸쳐 4,894만원을 빼돌렸다.
그의 범행은 업체 주인 한모(60)씨에게 발각되면서 끝이 났다. 경기가 좋지 않아 매출이 줄어 고민이던 한씨는 지난해 11월 장부를 보다가 손씨가 일을 한 날에만 매출액과 영수증 액수가 맞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2011년 장부까지 펼친 한씨는 박모(26)씨도 돈을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모든 장부를 다 보다가는 일을 못할 지경이었다. 한씨는 올해 2월 손씨와 박씨를 횡령 혐의로 도봉경찰서에 고소했다.
경찰서에 불려온 손씨는 “500만원을 빼돌렸다”며 순순히 혐의를 인정했다. 그러나 경찰은 카드 결제내역을 일일이 조회해 나머지 범행까지 다 찾아냈다. 박씨는 2010년 11월부터 2011년 6월까지 같은 수법으로 370만원을 빼돌린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결과 손씨는 자신 명의의 신용카드, 체크카드 11개 외에도 아버지와 어머니 카드까지 모두 13개의 카드를 범행에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계속 같은 카드로 결제승인 취소가 되면 업체 주인이 알아챌 것을 우려한 치밀한 수법이었다.
뒤늦게 죄를 뉘우친 손씨가 빼돌린 금액을 전액 돌려주자 한씨는 고소를 취하했다. 그러나 구속은 피할 수 없었다. 법원은 지난달 26일 손씨가 청구한 구속적부심을 기각했다. 경찰 관계자는 “1,700회 넘게 돈을 빼돌린 사실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빼돌린 370만원 중 150만원을 한씨에게 돌려주고 고소가 취하돼 불구속 기소됐다.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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