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현대차 요청에 폐지 검토
카드사와 중소 캐피털사 반발에 "현대차, 독과점 완화 대책 내라"
어떤 대책 내놓느냐 따라 존폐 결정
자동차를 살 때 고객이 신용카드로 일시불 결제를 하고 제휴 캐피탈사에 할부로 갚는 복합할부금융상품의 존폐 여부가 현대자동차의 손에 넘어갔다. 지난해 말 현대차가 금융감독원에 상품 폐지를 요청하자 중소 캐피탈사들이 이에 반발해 논란이 됐었다. 금융당국은 최근 현대차가 기존의 독과점 구조를 완화하는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상품 폐지는 어렵다고 잠정 결론을 내고 한발 뒤로 물러섰다.
현대차-현대캐피탈 독과점 구조
논란은 현대차와 계열사 현대캐피탈의 독과점 구조에서 시작됐다. 국내 자동차 판매 시장점유율 80%에 이르는 현대기아차 할부금융 구매고객 중 70%가 현대캐피탈을 이용한다. 전체 수익 중 자동차 할부금융 수익이 32%를 차지하는 현대캐피탈도 현대기아차 할부금융만 취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중소형 캐피탈사들은 이 틈새를 파고들기 위해 삼성카드 등과 손잡고 2010년 복합할부금융상품이란 것을 내놨다. 자동차 구매고객이 신용카드로 일시불 결제를 하면 카드사는 가맹점수수료(1.9%)를 챙긴다. 캐피탈사는 카드사에 고객 대신 대금을 지불하고 고객은 캐피탈사에 할부로 갚는다. 캐피탈사는 카드사로부터 제휴 수수료를 받고 고객에게 금리혜택을 주면서 이득을 본다. 고객은 카드결제에 따른 캐시백 혜택을 누리고 낮은 금리애 할부금융을 이용할 수 있다. 이 상품이 등장한 2010년에는 복합할부금융상품 시장규모가 8,654억원에 불과해 현대차에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장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4조5,906억원으로 매출이 5배 가량 급증한 것. 현대차가 복합할부금융상품으로 카드사에 내야 하는 가맹점 수수료가 지난해 무려 874억원에 달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동차회사가 낸 수수료로 캐피탈사와 카드사 배만 불리고 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게다가 2011년 복합할부금융상품을 출시해 월 2,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던 현대캐피탈은 지난해 6월 여신전문업법상 규제를 받으면서 취급액을 대폭(월 250억원) 줄여야 했다.
고객 선택권 보장해야
올 초까지만 해도 금융당국은 이 상품이 비정상적인 구조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인정해 상품폐지를 검토했었다. 하지만 카드사와 중소형 캐피탈사들이 소비자 편의성을 앞세우며 반발하자 검토를 원점으로 되돌린 상황. 삼성카드 관계자는 “신용카드사업은 가맹점 수수료를 받아 고객에게 혜택을 돌려주는 게 기본”이라면서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상품 출시로 기존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에서의 현대캐피탈 독과점 폐해도 일부 개선됐다고 보고 있다. 전체 신차 할부금융매출액 중 현대캐피탈 비중은 2011년 66.8%에서 지난해 56.5%로 10%포인트 이상 감소했다. JB우리캐피탈 관계자는 “현재 중소 캐피탈사가 판매하는 현대차 할부금융상품 70%가 복합할부금융상품”이라며 “이 상품이 폐지되면 30%에 불과한 중소 캐피탈 판매비중마저 현대캐피탈로 넘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품폐지로 현대캐피탈 시장 독과점이 더 가속화해 소비자에게 적용되는 금리도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대차가 자발적으로 독과점 깨야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금융당국은 현대차에게 공을 넘겼다. 8일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현대차가 자발적으로 독과점 구조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면 자동적으로 상품은 시장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라며 “현대차가 현대캐피탈 외에 다른 캐피탈에도 시장을 열어주면 굳이 캐피탈사들이 이 상품을 판매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현대차가 어떤 대책을 내놓는지에 따라 상품 존폐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위법적인 요소는 없지만 카드사용을 늘리려는 비정상적인 상품구조인 것은 맞다”며 “현대차가 중소형 캐피탈사와 제휴해 금리를 조정해주는 방안을 내놓으면 캐피탈사간 금리경쟁으로 소비자들도 혜택이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중소형 캐피탈사들은 최악의 경우 현대차를 대상으로 불공정거래 소송을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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