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 발은 퉁퉁 부어도 스트레스는 훌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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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 발은 퉁퉁 부어도 스트레스는 훌훌

입력
2014.07.08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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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톡 2030] 불타는 금요일

여대생 이해인씨

평일엔 학과수석 금요일엔 클럽여신

"하루 정도는 남자 시선 즐기고파"

불금을 즐기는 많은 젊은이들. 클럽 신드롬 카페 다운로드

“오빠, 저 지금 클럽 앞이에요.” 4일 밤 12시가 가까운 시간 서울 신사동 클럽 신드롬 앞. 여대생 이해인(21)씨의 전화를 받은 매니저가 나와 이씨를 안내했다. 강남에서 가장 뜨겁다는 곳 중 하나다. 30여명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길게 서 있었지만 매니저가 단골로 모시는 이씨는 언제나 즉시 입장이다. 200여명이 메운 클럽 안에 들어서자 허리, 어깨가 푹 파인 원피스 차림의 이씨에게 남자들의 시선이 걸렸다.

클럽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클럽 신드롬 카페 다운로드

이씨는 바에서 일렉트로닉 음악을 안주 삼아 진토닉 한 잔을 들이켰다. “술은 잘 못 하지만 춤을 추려면 연료를 넣어야 하니까요.” 이씨가 스테이지로 가서 어깨부터 리듬에 맞췄다. 한 시간쯤 지나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며 그는 말했다. “저는 카멜레온이에요. 수수한 옷차림의 여대생은 목요일까지만이에요. 불금(불타는 금요일)에는 최대한 성숙하게 보이기 위해 중무장해요.”

한국의 청년들은 왜 불금에 빠지는가. 금요일 밤 서울 홍대 앞, 이태원, 강남에는 젊음을 불태우려는 청춘남녀가 모여든다. 술과 춤과 인생을 소진하며 그들은 이성을 찾아 헤매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주목받는 시간을 꿈꾼다.

클럽에서 춤 추는 20~30대 남녀. 클럽 신드롬 카페 다운로드

이씨는 ‘숙대 여신’이다. 예쁘기로 소문났지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진 지독한 공부벌레로 살고 있다. 남들보다 많은 23학점을 소화한다. 학과 수업을 끝마치고 복습까지 마치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평균 오전 3시다. 죽어라 공부한 덕분에 지난해 1학기에는 학과 수석을 차지했다. 장학금은 입학하고 3학년인 지금까지 놓쳐본 적이 거의 없다. 모범생이라 교수님들 사랑도 듬뿍 받는 편이다.

하지만 금요일에는 아예 수업을 없앴다. 속눈썹을 하나하나 붙이고 입을 옷이며 구두를 고르려면 한나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금요일마다 그는 클럽을 찾아 주중 쌓인 고민과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이씨 역시 한국 대학생의 고민 0순위인 취업문제에 매몰돼 있는 평범한 청년이다. 이씨는 방송 기자를 꿈꾸며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대외활동도 하며 스펙을 쌓고 있지만 불안하다. 혹시 몰라 적성에도 안 맞는 경영학을 복수전공 중이다. 그는 “졸업까지 1년 조금 넘게 남았는데 그전까지 취업을 못 할까 갑갑하다”면서도 “그렇다고 일주일 내내 책상에만 앉아 고민하기 보다는 하루 정도 남자들의 시선을 즐기고 춤도 추면서 고민을 털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울함에 빠져 다음주를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씨에게 불금은 필수과목이다.

직장인 이상희씨

딱딱한 조직문화 지쳐 부드러운 블루스로

"여러 사람과 춤출수록 짜릿하죠"

금요일인 4일 오후 11시 서울 논현동 댄스스튜디오의 블루스파티에서 20~30대 남녀가 블루스를 추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4일 오후 10시 서울 논현동 한 댄스스튜디오에서는 직장인 이상희(30ㆍ여)씨가 한 남자와 블루스를 추고 있다. 이씨는 파트너의 손을 살포시 맞잡고 리듬을 즐기고 있다. 이씨는 퇴근 4시간 만에 평소 입던 청바지와 티셔츠 대신 검은색 시폰 드레스 차림에 ‘풀 메이크업’으로 변신했다. 눈꺼풀이 미러볼처럼 반짝인다. 운동화만 고집하던 발도 이날은 금색 댄스화를 받아들였다. 생전 처음 만난 댄스 파트너와 스킨십이 있지만 서로 선을 넘지 않고 음악을 즐기며 춤을 추기 때문에 이씨는 부담없이 스튜디오를 찾고 있다. 숨막히는 직장생활의 숨통을 열기 위해 1년 전쯤 블루스 파티를 찾기 시작한 이씨는 새벽 2시까지 발이 퉁퉁 붓도록 스텝을 밟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올해 2월까지 이씨는 한 외국계 회사의 연구원이었다. 대학 졸업 이후 쉼 없이 이어진 직장생활에 몸이 지치고 개인의 의견이 반영 안 되는 조직문화에 마음이 지쳤다. 당시 블루스는 이씨에게 유일한 활력소였다. 그 즈음 신대방, 신림, 논현동, 건대입구 등에서 블루스 파티가 속속 생겨났다. 1만4,000여원의 파티비만 내고 날이 밝을 때까지 춤과 와인에 취했다. “저질 체력이었지만 금요일마다 블루스는 꼭 추고 집에 갔다”고 그는 말했다. 이씨에게 불금의 블루스는 ‘힐링’이었다.

영업사원 석모씨

텁텁한 생활 탈탈터는 금요일

"관객 함성 소리 들으며 나를 확인"

금요일밤 힙합 뮤지션으로 변신하는 영업사원 석모씨. 석모씨 제공

금요일이면 대기업 영업사원에서 힙합 뮤지션으로 변신하는 석모(26)씨에게 불금은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4일 오후 7시 회사 화장실 한 켠에서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 스트릿패션 티셔츠와 힙합의 공식인 ‘조던’ 운동화를 챙긴 그는 홍대 클럽 ‘프리즘 홀’로 날아간다. 대학 시절 힙합의 매력에 빠진 이후 지금까지 금요일 밤 공연을 쉬지 않고 있다.

석씨는 1월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영화배급사에 입사했다. 남들은 부러워했지만 음악을 하며 자유롭게 살던 그에게 회사생활은 텁텁하기만 했다. 그런 석씨에게 불금은 탈출구이자 자존감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어떻게 영화관 방문객을 늘릴 수 있을지, 경쟁사는 어떤 홍보를 하고 있는지, 혹시 오늘 처리 못 한 법인카드 전표는 없는지, 금요일 밤에는 이 모든 걱정을 잊을 수 있어요.” 클럽 무대에서 석씨가 조명을 독차지했다. “회사에서는 주목 받을 일이 별로 없죠. 여기서는 달라요. 수십명의 관객들이 저만 바라보며 소리치죠. 함성을 통해 저를 확인할 수 있어요.”

대다수 2030이 불금을 즐기는 방식은 예상하다시피 술이다. “이태원이나 강남의 유명 술집에서 보드카 한 병 시켜서 친구와 나눠 마셔요. 운이 좋으면 옆 좌석에 있는 여성이랑 합석해서 놀다가 클럽에 가기도 하고요” 서울 삼성동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박모(30)씨는 불금의 술값으로 20만원 넘게 지출한다. 하지만 “아깝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 정도 비용으로 술의 힘을 빌어 일상의 탈출을 시도하다 마음에 맞는 이성이라도 만나면 만족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불타는 금요일에 남들이 즐길 불을 지피느라 힘들게 일하는 것 역시 이 나라의 청춘들이다. 여의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이모(23ㆍ여)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1주일에 하루 빼고는 제과점에서 낮 12시부터 자정까지 일을 해야 한다”며 “주말이 없는 사람에게 불금은 의미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한때 불금이 아무 상관이 없었던 그들도 언젠가 금요일을 불태울 때가 있으리라.

청년들의 고민을 담은 책 ‘2030크로스’의 저자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는 한국의 20~30대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불금에 몸부림친다”고 말했다.

이해인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리 또래는 금요일 밤을 불태우는 걸까요. 그러고 보니 오늘 클럽에도 취업 걱정에 불안한 20대와 직장을 다니면서도 삶이 고달픈 30대가 많은 것 같네요.”

장재진기자 blanc@hk.co.kr

김민정기자 mjkim72@hk.co.kr

신지후기자 hoo@hk.co.kr

전혼잎기자 hoi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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