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탈출 모습 보며 분노 폭발
“당신 자식들이 배에 타고 있어도 그럴 수 있는가? 내 새끼 살려내라.”
세월호 참사 피해 유족들의 감정이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법정에 선 이준석 선장(68) 등 세월호 선원들(15명)을 보면서도 멍든 가슴을 내리치며 애써 울분을 참아왔던 유족들이었다. 그러나 법정에서 재생된 사고 당시 구조 동영상 속 선원들의 뻔뻔한 탈출 모습에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유족들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8일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 임정엽) 심리로 201호 법정에서 열린 이 선장 등에 대한 두 번째 공판은 유족들의 분노로 가득 찼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공판이 속행되자 방청석에선 유족들의 흐느낌과 가슴 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검찰이 세월호 도면을 토대로 제작한 세월호 모형으로 배의 구조와 화물 적재 상황, 선원들의 탈출 장소, 비상 대피 갑판 위치 등에 대해 설명할 때부터 유족들의 눈물샘은 터지기 시작했다.
오전 재판이 끝날 무렵, 유족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저들에게 밥도 주지 마라. 짐승 같은 것들” “저 X들도 수장시켜라”고 소리를 질렀다. 한 여성 유가족은 신발을 벗어 던지려고 법대로 향하다 법정 경위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이날 유족들의 증오의 감정선을 건드린 것은 사고 당시 목포해경 123정과 헬기가 촬영한 구조 동영상 속 승객을 버린 채 서둘러 탈출하는 선원들 모습이었다. 한 유족은 “왜 선장은 퇴선 명령을 하지 않았는지 꼭 직접 묻고 싶다. 증거가 나왔으니 재판을 중단하고 승무원들을 수장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흥분했다.
재판부가 “유가족이 원하는 대로 진상 규명을 하려면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과학적으로 밝혀야 하는데 재판을 하지 말라는 건 말이 안 된다.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재판에 임하고 있다”고 달랜 뒤에야 유족들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유족들의 분노는 오후 재판에서도 쉽게 가라 앉지 않았다. 재판부는 사고 당일인 4월 16일 오전 8시 52분부터 숨진 단원고 학생이 4층 선실에서 휴대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틀다가 9시 6분 57초에 “구명조끼를 입고 현재 위치에 이동하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는 장면을 확인한 뒤 재생을 중단시켰다. 유족들은 “왜 중간에 동영상을 끊느냐”고 거세게 항의했고, 재판부는 “공소사실(움직이지 말라는 안내방송 시간)과 관련된 내용은 다 나왔다. 앞으로도 증거 조사할 때 봐야 할 동영상이 많은데 이런 식으로 다 보자고 하면 재판 못한다. 너무하신 것 아니냐”난감해 했다. 다소 당황해 하던 재판부는 “동영상을 못 본 사람들이 많다”는 유족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나머지 동영상 분량을 재생한 뒤 오후 6시 5분쯤 재판을 종료했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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