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어느 제어 방식에 대한 설명이다. 이와 같은 제어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제어하는 양과 목표하는 양을 비교하여 그 차이가 없도록 정확한 동작을 하는 제어 방식이다’
①세탁기 ②신호등 ③냉장고 ④선풍기 ⑤자동판매기
1970, 80년대 학교를 다닌 사람으로서 우리 학교교육이 모든 교과를 암기과목으로 만드는데 얼마나 뛰어난지 잘 알고 있지만, 21세기인 지금도 이토록 변하지 않았는지는 몰랐다.
위 문제는 현재 중학교 2학년이 배우는 기술ㆍ가정 교과서에 실려있는 것이다. 제조업 분야에서 창의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치는 단원이다. 2009 교육과정에 따라 새로 만들어진 교과서답게 이 단원에는 스티브 잡스가 창의적 기업인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대를 따라가려는 노력은 그뿐이다. 창의력을 키운다며, 학생들에게 만들도록 하는 과제는 어처구니없게도 책꽂이다. 1970년대 함석으로 쓰레받기를 만들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정부의 정책목표에 따라 교과서의 포장은 바뀌지만, 정작 학생이 배우는 것은 40년 전과 동일한 것이다.
중학생 딸의 기술ㆍ가정 교과서를 들춰본 이유는 내년부터 도입하려는 학교 소프트웨어(SW)교육 방안이 이달 중 결정되는데, 교육부의 소극적 자세로 흐지부지 될 것이란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창조경제를 견인할 창의인재 육성’이란 목표를 내걸고 미래창조과학부와 교육부가 합동으로 ‘초ㆍ중등 SW교육 강화 실무작업반’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청회 몇 번 개최한 것을 제외하곤 성과가 없다.
우리나라 많은 학부모들은 자녀가 획일적이고 권위적 교육을 통해 비슷비슷한 규격품으로 자라나길 원치 않는다. 본인이 그런 교육을 받고 성장해, 상명하복식 조직에서 일하다 보니 급변한 세상에 적응하기가 얼마나 힘들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나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주커버그 같은 젊은이들의 성공 신화를 보면서 우리 아이가 그렇게 자라길 꿈꾼다. 게다가 디지털시대에 맞춰 자신의 창의력을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표현할 능력을 갖춘 인재가 늘어난다면 그만큼 우리사회의 미래도 밝아진다.
SW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한 경쟁국들은 이미 앞서가고 있다. 인도는 SW과목을 2010년부터 초ㆍ중등에서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고 있고, 영국은 9월 새 학기부터 5~16세까지 과정에 필수과목으로 채택했다. 에스토니아, 핀란드 등도 올해와 내년 사이에 SW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교육부는 초ㆍ중교에 SW교과를 넣는 것에 소극적인가. 교육부 담당 실무 책임자의 답변은 이렇다. “미래부는 경제부처니까 경제 활성화를 위한 인력양성이 목표고, 교육과정에 SW과목을 독립과정으로 넣으려고 한다. 하지만 교육부로서는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한쪽 의견만 받아줄 수 없고 전체를 봐야 한다. 문화부에서 예술인력 양성하는 과목을 넣어달라고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교육부는 학습부담이 증가한다는 점에서 반대 입장이다.”
이 실무자가 말하는 ‘다양한 이해관계’란 도대체 무엇인가. 지난 3일 열린 관련 공개 토론회에서 나온 “교과과정 개편은 공동묘지 옮기는 것보다 힘들다는 얘기가 있다”며 “내 교과만 중요하다는 교과 이기주의를 버리고 각 분야가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는 발언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교육부 직원은 SW교과가 생기면 줄어들게 될 다른 과목 교사들의 기득권을 ‘다양한 이해관계’라고 표현한 것이다.
올바른 정책을 위해 예상되는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정부부처의 중요 임무라면, 우리나라 교육부는 교사의 반발을 모면하기 위해 ‘국가 백년지계’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다. 좀더 자극적으로 말하자면 교육부는 ‘책꽂이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교사를 보호하기 위해, 아이들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기회를 놓치는 것쯤은 문제가 안된다’고 결정한 것이다.
아 참, 서두에 제시한 문제의 ‘정답’은 ‘③냉장고’로 돼 있다. “세탁기나 선풍기는 왜 답이 아니냐”고 질문하는 학생이 있다면, 1970, 80년대 나를 가르친 교사들은 대부분 “그냥 외어”라고 답했다. 오늘의 교실에선 얼마나 다른가.
정영오 산업부장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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