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기둥·천장·벽, 광고로 '도배'
“환승 안내 표지판을 찾는데 광고가 먼저 보여서 당황했어요”지난 7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승강장에서 만난 서유림(27)씨는 광고가 너무 많아서 필요한 정보를 찾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신분당선으로 갈아타는 통로 입구에는 똑 같은 장면의 대형 영화 광고 수십 개가 연달아 붙어 있었다. 상대적으로 작은 환승 안내판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아 이곳이 환승통로임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100여m 길이의 스크린도어 역시 광고로 도배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조그만 배너부터 가로2m 이상의 대형 사진까지 100개도 넘는 광고가 셋 또는 다섯 개씩 조합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 눈에 잘 띄는 원색을 많이 쓴데다 조명까지 밝아 눈이 부셨고 동영상 광고 모니터에서는 적지 않은 열기까지 뿜어져 나왔다.
공해 수준에 이른 광고물
지하철 역사에 광고가 넘치면서 시민의 정보선택권 침해하는 정도를 넘어 공해 수준까지 이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2호선 강남역의 경우 총 702개의 광고가 역 구내 곳곳에 게시되어 있었다. 광고의 크기에 상관 없이 한 모니터에서 여러 건의 동영상 광고가 나오는 경우도 1개로 간주해 합산했다. 강남역 이용객의 이동 동선과 광고의 위치를 비교해 보니 역사에 진입해 전동차를 탈 때까지 최대 200개 이상의 광고에 노출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시된 광고의 대부분은 영화나 게임, 병원 등 상업광고였고 공익광고는 서울 메트로 게시판을 포함 28개에 불과했다.
광고 효과를 감안할 때 강남이나 삼성 신촌 홍대입구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역에 광고가 몰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공간이 한정되다 보니 시선이 머물 만 한 곳에는 여지없이 광고판이 들어서고 있다. 스크린도어는 물론 기둥과 천장마저 광고판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정작 눈에 띄어야 할 것은 안보여
화려하고 자극적인 이미지가 늘어나면서 비상 재난시설마저 눈에 띄지 않거나 가려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2호선 홍대입구역의 경우 벽면에 설치된 소화기가 조명 광고판에 둘러싸여 있어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 을지로입구역에서는 충분한 여유공간 없이 대형 광고판이 들어서는 바람에 비상구 표시등이 광고판 사이에 끼면서 가장자리가 잘려나가기도 했다. 점등이 되더라도 화재와 같은 재난상황에서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소화기의 설치와 표시 기준이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재빨리 사용할 수 있도록 눈에 잘 띄는 곳에 보관하는 것은 상식”이라고 밝혔다.
광고총량제 도입?
넘쳐나는 지하철 광고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일각에서 광고 총량제를 제기하는데 대해 서울 메트로는 ‘시민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수익성과 공간 활용 등을 판단해 결정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상담심리 전문가 박성현 박사는 “광고가 지각의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많아지면 인체의 감각기관은 무신경, 무감각해지는 방식으로 방어를 하게 되지만 일부의 경우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인해 불안감이나 우울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조영곤 변호사는 “누구나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기본권리를 지니지만 현실적으로 광고 영업의 자유까지 법률로서 제한하는 것은 무리”라며 “광고 운영 주체가 자발적으로 광고의 크기나 숫자를 줄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강다연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4)
이재림 인턴기자(경희대 경영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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