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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숲 속, 맑은 물 흐르는 옛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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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숲 속, 맑은 물 흐르는 옛길을 걷다

입력
2014.07.0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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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령 옛길 홍천 구간(정상~명개리)은 계곡 따라 간다. 맑은 물길과 나란히 달리다가 때로는 넘나들며 이어진다. 물 머금은 숲은 싱싱하고 풍성하다. 태고의 자연이 이 길에 있다.
구룡령 옛길 홍천 구간(정상~명개리)은 계곡 따라 간다. 맑은 물길과 나란히 달리다가 때로는 넘나들며 이어진다. 물 머금은 숲은 싱싱하고 풍성하다. 태고의 자연이 이 길에 있다.

강원도 양양에서 홍천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구룡령이다. 소박한 길 하나, 뱀처럼 기어 이 고개를 넘는다. 구룡령 옛길이다. 숲이 참 울창한 길이다. 빈틈없는 숲은 한낮 날카로운 뙤약볕도 뚫기가 쉽지 않다. 냉장고 문 열 때 느껴지는 서늘함이 그래서 여름 숲에 가득하다. 길은 또 다정하다. 가마꾼, 지게꾼, 산꾼, 약초꾼이 오래전부터 이 길 타고 백두대간을 넘었다. 이들의 애환과 수수한 사연들이 돌멩이가 되고 나무가 돼 오롯이 길에 부려져 있다. 만나는 자연들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길은 그리고 재미있다. 맑은 물 흐르니 엉덩이 붙이고 앉으면 탁족 명소가 따로 없다. 하늘로 쭉쭉 뻗은 금강송의 자태는 마음까지 탁 트이게 만든다. 한여름 숲이 얼마나 화사한지 가서 보면 알게 된다. 또 호젓하고 청량하기가 바다보다 낫다.

구룡령 옛길 홍천 구간은 양양 구간의 명성에 가려 덜 알려졌지만 양양 구간에 비해 식생이 풍부하고 숲이 울창해 한번 다녀간 사람들이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고 숲해설체험지도사 남상수씨는 설명한다.
구룡령 옛길 홍천 구간은 양양 구간의 명성에 가려 덜 알려졌지만 양양 구간에 비해 식생이 풍부하고 숲이 울창해 한번 다녀간 사람들이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고 숲해설체험지도사 남상수씨는 설명한다.

○ 용이 승천한 백두대간 고갯길

구룡령 옛길은 양양군 서면 갈천리에서 홍천군 내면 명개리를 잇는다. 지금은 국도 56호선이 두 마을을 연결한다. 일본이 자원 수탈을 위해 1908년 닦은 도로다. 1991년에 번듯하게 포장까지 됐다. 이 도로가 지나는 고개 정상에 ‘구룡령’이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여기서 약 1.2km 산으로 파고들어야 비로소 ‘진짜’ 고개 정상이다. 옛 사람들 넘던 ‘진짜’ 옛길도 여기 가야 만난다. 구룡령백두대간방문자센터 맞은편, 나무계단을 올라 좁은 산길을 약 30분쯤 걸어야 옛길 정상. 들머리 경사는 가파르지만 능선 타면 완만해진다. 첫 갈림길에서 ‘갈전곡봉’ 방향이다. 주변으로 여름 야생화가 제법 피었다.

홍천은 전국의 지자체 가운데 면적이 가장 넓다. 서울의 세 배다. 그런데 산이 많다. 80%가 넘는다. 백두대간 지나고 해발 1,000m가 넘는 준봉들이 이 땅에 허다하다. 옛길 고갯마루도 높이가 1,089m다. “사람이 걸어서 넘던, 영동과 영서를 잇는 백두대간 고갯길 가운데 가장 높다”는 것이 숲해설체험지도사 남상수씨의 설명이다. 한계령, 진부령, 대관령, 미시령 등 그 유명한 고개들도 이에 못 미친다. 도로가 난 고개까지 다 합쳐 따져도 운두령 다음쯤 된단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은 몸을 뒤틀며 하늘로 치솟는 용을 닮았다. 걸어보면 안다. 그래서 구룡령(九龍嶺)이다. 고려 때는 구운령(拘雲嶺)으로도 불렸단다. 구름이 갇힐 정도로 높아서였을 거다. 갈천마을에 살던 사내가 장가를 가지 못해 산 너머 홍천에서 처녀를 보쌈했다. 이 고개 넘다가 구름이 끼어 길을 잃었는데 개가 길을 안내해서 살아 돌아왔단다. 고갯마루에는 여전히 구름이 오락가락한다.

사람들은 산적을 피하기 위해 주막에서 10여명씩 무리지어 고개를 넘었다. 이곳이 주막이 있던 자리. 명개리 마을 도착할 때 쯤 보인다.
사람들은 산적을 피하기 위해 주막에서 10여명씩 무리지어 고개를 넘었다. 이곳이 주막이 있던 자리. 명개리 마을 도착할 때 쯤 보인다.

옛길 정상은 ‘사거리’다. 구룡령 옛길과 백두대간 종주길이 교차한다. “여기에 산신당이 있었어요. 여기에 제를 올리고 고개를 넘으면 만사가 잘 풀렸어. 과거에도 급제하고 장사도 잘 됐답니다. 고개 뻣뻣하게 들고 가면 결과는 반대였어요.” 남씨의 설명이다.

산신당 일대는 산적들의 행동 무대였다. 남씨에 따르면 센터 인근에 산적 소굴이 있었다. 산적들은 정상에서 사람들 기다려 약탈했다. “사람들은 저 아래 주막에서 열 명씩 모여 길을 나섰는데 그 주막 터가 명개리 쪽에 지금도 남아있어요.” 조선시대 말까지 이랬단다.

숱한 사람들의 발길이 순하고 아늑한 숲길을 냈다. 영동지방 사람들은 건어물을, 영서지방 사람들은 곡물을 짊어지고 고개를 넘었다. 지게꾼과 가마꾼도 이 길로 양양과 홍천을 오갔다. 심마니, 약초꾼들은 큰 도로 난 후에도 이 길을 이용했다. 도로 따라 가면 갈천리에서 명개리까지 약 20km에 달하는 거리가 옛길로 가면 약 6km로 줄어든다.

외지에서 오려면, 산을 돌아 큰 고개 넘어야 닿는지라, 구룡령 옛길은 한동안 일반인들에게 잊혀졌다. 백두대간 종주에 나선 사람들이 종종 찾았다. 구룡령에서 남쪽은 백두대간 주능선인 조침령, 북쪽은 진부령까지 이어진다. 옛길 ‘붐’이 일고 2007년 양양 구간(정상~갈천리)이 명승(29호)으로 지정됐다. 다시 길은 입소문 탔다. 뒤늦게 다듬어진 홍천 구간(정상~명개리)까지 요즘은 물어물어 찾는 사람들이 생겼다.

구룡령옛길 홍천 구간의 계곡. 초록의 이끼 선명한 돌 틈으로 탁족하기 딱 좋을 만큼의 맑은 물이 흐른다.
구룡령옛길 홍천 구간의 계곡. 초록의 이끼 선명한 돌 틈으로 탁족하기 딱 좋을 만큼의 맑은 물이 흐른다.

○ 수수한 삶의 이야기 한 가득

옛길 전구간을 한 번에 걷기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옛길 정상에서부터 양양이나 홍천 방향 중 하나를 택해 내려간다. 열에 아홉은 양양 구간을 택한다. 유명해서다. 그런데 한번 다녀간 사람들은 홍천 구간을 찾는다.

남씨에 따르면 이유는 이렇다. 홍천 구간은 계곡을 따라 간다. 정상에서 10여분만 내려가면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10여분 가면 작은 계곡이 나타난다. 발 담그기 딱 좋을 만한 계곡. 얼굴과 팔다리의 땀을 시원하게 씻어내기에도 그만이다. 길은 계곡과 붙었다, 떨어지고, 또 넘나들며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물이 흐르니 식생이 풍성하다. 침엽수보다 활엽수가 많아 숲이 더 풍성하게 느껴진다. 이러니 걷기가 지루하지 않다. 여기에다 경사까지 완만하고 길이도 아쉽지 않을 만큼 길다. 홍천 구간은 약 3.5km, 양양 구간은 약 2.7km다.

걷다 보면 얘기 보따리 하나씩 터진다. 계곡이 시작될 즈음은 ‘서서물나들’이다. 몸을 굽히지 않고 선 채로 물을 마실 수 있었다는 장소다. 물이 흐르는 곳의 높이가 어른 가슴정도여서 가능했다. 지금은 많이 낮아졌다. 다시 30분쯤 가면 ‘영골약수’다. 물길 옆 동그란 틈으로 탄산약수가 샘솟는다.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기기도 한다. 나무의 생김새도 원시의 분위기 돋운다. 코끼리 얼굴 닮은 ‘코끼리나무’, 원숭이가 앉아 있는 모양의 ‘원숭이나무’가 흥미롭다.

길 끝에 나타나는 마을, 명개리는 조선시대의 그 유명한 예언서 ‘정감록’에 등장하는 ‘삼둔사가리’ 가운데 하나인 명지가리다. 삼둔사가리는 난리를 피해 사람이 살 만한 땅이다. 삼둔은 월둔(홍천), 살둔(홍천), 귀둔(인제)이고, 사가리는 명지가리(홍천), 아침가리(인제), 적가리(인제), 연가리(인제)다. 때 묻지 않은 산마을의 정취가 그래서 오롯하다.

옛길 정상에서 명개리까지 쉬엄쉬엄 걸어 약 2시간 30분 걸렸다.

영골약수. 탄산이 톡 쏜다.
영골약수. 탄산이 톡 쏜다.

양양 구간은 계곡 대신 능선 따라 간다. 홍천 구간에 비해 길이 잘 다듬어졌다. 땀이 좀 난다 싶을 때마다 사연 깃든 장소들이 하나씩 나타난다. 얘기가 많은 것이 양양 구간의 재미다.

처음 만나는 ‘횟돌반쟁이’는 횟돌을 캐던 장소다. 횟돌을 갈아 흙에 섞어 묘에 쓰면 단단하기가 시멘트 같아진다. 이러니 나무뿌리가 관을 뚫지 못한다. ‘반쟁이’는 ‘반정’이란 말이다. 두 지점의 딱 절반이 되는 지점이 반정이다. 여기 지나면 ‘솔반쟁이’다. 주변에 소나무 많아서 붙은 이름이다. 수령 200~300년 된 금강송인데, 20여년 전 경복궁 복원될 때도 10여 그루의 이 일대 소나무가 쓰였단다. ‘묘반쟁이’에는 무덤에 얽힌 장소다. 옛날에 양양의 수령과 홍천의 수령이 약속을 했다. 같은 시각에 양양과 홍천에서 각각 출발해 서로 만나는 지점을 두 고을의 경계로 삼기로. 이를 알고 양양 수령을 모시던 노비가 수령을 업고 열심히 달렸다. 이 덕에 두 고을의 경계는 홍천 쪽으로 쑥 들어갔다. 그런데 너무 힘을 쓴 탓에 노비는 돌아오는 길 세상을 떠났다. 양양 수령이 이를 가엾게 여겨 큰 묘를 써줬다. 노비가 수령을 업고 달린 것이 아니라, 수령이 빨리 갈 수 있도록 추위에 여러 차례 오가며 길을 닦았다고도 전하다. 묘반쟁이 지나면 ‘옛날삭도’가 있다. 철광석 실어 날랐던 삭도(케이블카)의 흔적이다. 일대에서는 70년대까지 철을 캤단다.

여기 지나면 군데군데 멋진 금강송들이 나타난다. 하늘로 쭉 뻗은 몸통, 거북 등처럼 갈라진 껍질, 풀어헤친 가지, 어느 것 하나 신령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다 내려오면 맑은 물 흐르는 계곡이다. 땀 씻어내고 탁족하기 딱 좋은 장소다. 옛길 정상에서 여기까지 약 2시간 거리다.

사방으로 가지를 풀어 헤친 금강송의 자태가 신령스럽다. 구룡령 옛길 양양 구간을 걸으면 기이한 형태의 나무들 실컷 볼 수 있다.
사방으로 가지를 풀어 헤친 금강송의 자태가 신령스럽다. 구룡령 옛길 양양 구간을 걸으면 기이한 형태의 나무들 실컷 볼 수 있다.

○ 여행메모

서울-춘천고속도로 동홍천IC로 나와 국도 56호선(구룡령로)타고 서석면, 내면 거쳐 구룡령으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르다.

갈천리에서 명개리까지 구룡령 옛길 전구간은 약 6km. 걷는데 5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갈천리에서 시작하려면 갈천리종합복지회관(갈천리경로당)을 찾아간다. 이곳 위쪽으로 구룡령 옛길 이정표가 보인다. 명개리에서 시작하려면 명개리마을회관을 찾아간다. 이 길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구룡령 옛길 이정표가 보인다. 정상에서 한 구간을 택하려면 구룡령백두대간방문자센터 찾아간다. 여기서 옛길 정상까지 약 30분, 옛길 정상에서 갈천리까지 약 2시간, 명개리까지 약 2시간 30분 걸린다. 마을 민박이나 식당 등을 이용할 경우에 한해 ‘기름값’ 정도 지불하면 주인장이 정상이나 마을까지 픽업 해주는 경우가 있다.

비가 많이 오면 계곡 따라가는 홍천 쪽 길에 물이 많이 불어난다. 출발 전 구룡령백두대간방문자센터를 방문해 상태에 대해 문의한다. 이곳 숲해설체험지도사 남상수씨(010-4860-7979)가 구룡령 옛길에 대해 해박하다.

홍천ㆍ양양=글ㆍ사진 김성환기자 spam001@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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