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여자에게 묻는다. 어느 손의 손톱을 먼저 깎느냐고. 여자는 왼쪽이라 답한다. 그런 부류의 사람은 낙천주의자, 라며 남자가 말을 잇는다. 일단 쉬운 것부터 하고 나중 일은 그때 생각하는 거예요. 오른손잡이는 왼쪽 손톱을 깎는 게 더 쉬우니까. 그러자 여자가 반문한다. 쉬운 것부터 하는 게 아니라, 어렵고 힘든 걸 일부러 남겨두는 거라면요? 역시 낙천주의일까요…? ‘님포매니악’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대화다. 결국은 똑같지만 무얼 먼저 하는가. 그 차이로 남자는 성격을 구분하고 여자는 그 구분을 다시 지운다. 진지한 장면이었지만 나는 조금 웃고 말았다. 오래 전 급식 반찬을 두고 짝과 어이없는 실랑이를 벌인 일이 기억난 까닭이다. 짝은 반찬 중 늘 맛있는 것부터 먹는 편이었고 나는 반대였는데, 어느 날 야금야금 소시지를 잘라먹는 나를 향해 그 애가 이렇게 이죽거렸다. “배가 다 부른 다음 무슨 맛으로 먹니?” 나는 아껴두고 끝에 가서 먹는 게 더 맛있는 법이라며 그 즈음 배운 ‘조삼모사’를 되는대로 들먹였다.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이든, 아침에 셋, 저녁에 넷이든, 흥!” 고사성어의 뜻은 황당한 방향으로 꺾여 우리는 조삼모사가 낫네 조사모삼이 낫네 각자의 개똥철학을 풀었다. 낫고 말고가 아니라 성격 유형일지 모른다며 ‘조삼모사형 소심파’ ‘조사모삼형 낙천파’로 갈라본 건 어른이 된 후인데, 영화 속 여자의 말을 듣고 보니 이 또한 부질없는 구분이랄 밖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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