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의 동북아] <2> 일본의 우경화와 한일관계
집단자위권 등 우경화 규탄 불구 정작 공동성명선 경고 메시지 빠져
中, 동북아 주도권 연계 속내 韓, 한미일 공조 의식할 수밖에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4일 특별오찬을 가진 자리에서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비롯한 우경화 문제를 강한 톤으로 규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3일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의 내년 광복ㆍ항일승전 70주년 공동행사 제안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공동성명에는 대일 메시지를 하나도 담을 수 없었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나타난 박 대통령의 입장은 일본의 우경화에 대응한 우리 정부의 고민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다. 한미일 삼각공조를 약화시키려는 중국의 의도를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입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한중 관계를 확실한 지렛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머뭇대는 사이 일본의 과거사 왜곡과 군사대국화 야욕이 노골화되면서 우리의 선택지가 갈수록 좁아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중 양국 역사공조 합의는 공염불
한중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 부속서를 통해 일본에 대응한 몇 가지 합의에 도달했다. 특히 일본의 과거사 이슈 중에 위안부 문제를 합의문에 적시하며 관련 자료를 교환하고 공동연구를 통해 협력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조차도 공동연구의 주체가 정부인지, 민간인지가 불명확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양국 민간 전문가들은 위안부 관련 사료를 공동 발굴하며 일본에 대응할 증거자료를 확보해가고 있지만 우리 정부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중국이 지난달 위안부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신청한 것과 달리 우리 정부는 2017년 이후로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더구나 한중 공동역사 연구는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동북공정’ 문제를 건드릴 수 있어 우리와 중국 모두 껄끄러운 상황이 될 수 있다. 2008년 양국 정상회담에서 선언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계기로 한중 전문가 공동위원회가 출범했지만 2012년 11월 이후 활동이 중단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위원회가 내놓은 결과물 가운데 양국 고위급 교류 활성화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본 궤도에 올랐지만 유독 역사분야의 협력은 제자리걸음이다.
때문에 한중 역사 공조는 애초부터 실현불가능한 접근이라는 지적이다. 외교 소식통은 “공동성명 부속서에 공동역사 연구를 강조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적시한 것은 자칫 동북공정으로 연구의 범위가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며 “하지만 동북아 역사는 서로 난마처럼 얽혀있어 불똥이 엉뚱하게 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 우경화에 말로만 큰소리
우리 정부의 대일정책 기조는 애초부터 양면성을 갖고 있다. 역사문제 해결을 우선적으로 강조하면서도 안보 이슈와 분리 대응이 어려운 한계가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의 중심축인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위안부, 야스쿠니 신사 참배, 교과서 검정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아베 정권을 향해 거침없이 칼을 겨눴지만 정작 한반도가 영향권에 포함된 집단 자위권이 공식화되는 과정에서는 일본을 상대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한 뒤로도 대일 강경책은 한미일 공조 때문에 번번이 좌절됐다. 박 대통령은 취임 초 역사인식 문제로 일본을 거세 몰아붙였지만 지난해 10월 미일 외교ㆍ국방장관 연석회의를 계기로 미국이 일본의 집단 자위권을 용인하자 11월 한중일 공동역사교과서 발간을 제안하며 대일 비판 수위를 낮췄다. 이어 12월 아베 신조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한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지만 올해 4월 한일 순방을 앞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중재로 지난 3월 한미일 정상회담에 응하며 다시 일본을 향한 칼날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반면 중국은 일본을 거세게 밀어붙여도 부담이 적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물리적으로 충돌하고 있는데다 동북아의 주도권을 놓고 사생결단으로 맞붙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공조를 매개로 우리가 중국과의 공동전선을 강조하지만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이처럼 동북아 정세를 보는 양국이 시각이 다른 탓이 크다.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미국이 버티고 있는 한 우리의 대일 압박은 근본적 한계가 있다”며 “중국을 끌어들여 목소리를 높이면 결과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중 대일공조에서 역사와 안보는 분리해야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한중협력과 한일관계를 어떻게 조화롭게 가져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한중 대일공조에서 역사와 안보문제를 분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국이 비핵화를 내세우지만 북한과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듯, 우리도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일본의 우경화에 대응한 역사문제에 보조를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만간 우리측 고위당국자가 미국을 방문해 한중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미 동맹의 존재를 인식시켜 중국의 불필요한 억측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중국이 역사와 안보이슈를 연계하려 해도 우리가 분명한 반대의사를 밝히면 중국측 의도에 휘둘릴 우려는 적다”면서 “한중 관계를 고려한다는 이유로 잠자코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조언했다.
반면 내년 수교 50주년을 맞는 한일 관계의 양상에 따라 중국 카드를 남겨둬야 하다는 관측도 있다. 이태환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광복 70주년 행사는 정치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에 섣불리 결론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면서 “한일 관계 개선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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