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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서로 마주하는 힘, 사진

입력
2014.07.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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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2006년 첫 사진 속 '아줌마'였던 어머니(왼쪽사진)는 이제 팔순의 할머니(오른쪽)가 되었다. 켜켜이 쌓이는 주름만큼 아쉬움과 감사함이 공존한다.
2006년 첫 사진 속 '아줌마'였던 어머니(왼쪽사진)는 이제 팔순의 할머니(오른쪽)가 되었다. 켜켜이 쌓이는 주름만큼 아쉬움과 감사함이 공존한다.

“아들! 이왕 곱게 차려 입었으니 나 오늘 영정사진 하나 찍어두면 안될까?”

오래 전 ‘그날’ 나는 잠시 귀를 의심했습니다. 가슴이 철렁거리며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고 두 눈의 동공은 소리 없이 흔들렸습니다.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말을 던진 ‘엄니(어머니를 여태 그리 부릅니다)’의 재촉하는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습니다. 나는 당황스러움에 붉어진 얼굴을 내보이기 싫어 잠시 먼 산을 바라보며 딴청을 부렸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엄니’의 한 마디. 한 순간에 심장이 후끈거렸지만 이미 내 스스로 오래 전부터 품고 있던 작은 소망이었기에 마치 속내를 들킨 어린애처럼 작아진 나는 마냥 가슴이 먹먹해지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미의 삶을 증명하는 사진 ‘한’ 컷은 당연히 내 스스로 담아내고 싶은 마음이 이미 서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엄니 너무 곱고 멋지니까 한 컷 찍어놓기나 하지요, 뭐.”

기껏 꺼낸 대답은 그랬지만 목소리에 미세하게 실린 떨림은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카메라 파인더 너머로 아들을 향해 사랑 가득한 표정을 짓는 엄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의 얼굴엔 엷은 미소가 살포시 퍼졌습니다. 셔터를 누르기도 전에 문득 자식들을 위해 한없는 희생과 배려의 성심으로 살아온 당신의 하루들이 사무치게 눈에 들어와 맺혔습니다. 이어 사각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것은 단지 한 컷의 사진이 아니라 엄니 당신의 귀한 삶 그 자체였습니다. 그 순간 뭐랄까. 콩닥거리던 가슴에 벅찬 감동이 일렁이더니 내 어미의 형상 이상의 무언가가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처음으로 어미의 영정사진을 가슴에 담았던 2006년 12월 23일 그날 이후, 나는 가슴이 동할 때마다 매년 거르지 않고 카메라를 들어 엄니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항상 ‘아줌마’의 형상이었던, 아니 그랬으면 싶었던 나의 엄니는 어느새 얼굴 가득 세월을 채운 할머니가 되었고, ‘그 날’의 사진과 비교할수록 그 차이는 계속 벌어져만 갑니다. 8년 전 그날에 비해 지금 우리 엄니는 누가 봐도 영락없는 1934년 생 할머니가 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먹먹함에 가벼운 흔들림은 있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카메라는 어느새 어미와 자식 사이의 깊이를 확인하는 도구가 되었고, 그 결이 켜켜이 쌓여가는 것에 아쉬움을 넘는 ‘존재함’의 기쁨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기운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부터 발길 닿는 곳마다 어느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들의 늙수그레한 얼굴들에 자주 시선이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저 남의 부모일 뿐이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 구분이나 경계 없이 그들의 얼굴에 쌓인 ‘세월’을 보면서 기나긴 시간 동안 채워냈을 삶의 궤적들에 겸허히 고개를 숙일 따름입니다. 조용히 눈으로만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살아내어 주셔서, 그리고 내 앞에 하나의 귀한 형상으로 다가와 주어 그저 감사하다는 생각에 그러합니다. 사진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이 다른 결과물들로 남겨지기 마련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는 유명한 얘기도 있지만 ‘보이는 만큼 알게’ 되지 않을까 거꾸로 생각도 해보면서 이 생각이 허접스럽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품어도 봅니다.

얼마 전 내게 사진수업을 듣고 있는 한 중년의 여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 왔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갑자기 당신의 영정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셔서 너무 당황스럽고 속상해서 일단 거절했다는 얘기였습니다. 물론 그럴 만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제안’은 삶의 마감을 앞두고 이별의 의식을 치르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픈 속뜻을 밝히신 것일 거라고 일부러 화답을 해주었습니다. 그 동안 품어 쌓아온 귀한 순간들을 더불어 살펴 ‘보자’는 것이니 회피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꼭 사진을 찍어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제 기다려봅니다. 자신의 어머니와 다시 마주했을 그녀의 생각에 변화가 생겼는지, 서로를 바라보고 살피는 시간으로 인해 자신의 어머니를 어떻게 다시 바라보게 되었는지, 그 시선들이 무척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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