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완화가 부른 주차난·소음
공급 과잉으로 작년부터 인허가 급감
30대 직장인 박모씨는 올 초에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신축원룸에 거주했던 두 달 간의 시간을 “악몽이었다”고 회상한다. 옆집 세입자의 휴대전화 벨소리나 화장실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통에 생활 자체가 불가능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옆 건물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도 문제였다. 방을 알아볼 때만해도 공실 상태였는데 나중에 학원이 입주를 하면서 밤이나 주말에도 창문을 열면 수강생들과 눈을 마주쳐야 했다. 박씨는 “스트레스로 위장병이 심해져 병원에 다녔다”며 “집주인은 건축법상 전혀 문제가 없는 건물이라며 너무 예민하다고 오히려 면박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보증금 1,000만원, 월세 50만원(관리비 5만원 포함)에서 월세 10만원이 더 비싼 인근의 오피스텔로 이사를 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골목길은 최근 마포구청에 주차 관련 민원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저녁만 되면 주ㆍ정차된 차들로 골목길이 주차장으로 변해 차량 통행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들은 최근 주변에 도시형생활주택이 잇따라 입주를 시작한 것을 원인으로 꼽는다. 인근에 살고 있는 주민 김모씨는 “100가구가 넘는 신축 건물이 두 개나 생겼는데 건물 내에는 주차장이 거의 없어 저녁마다 주차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1~2인 가구 증가와 전월세난 해소를 위해 정부가 도입한 도시형생활주택이 도심의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5년 사이 30만 가구 이상 인허가된 물량들의 공급이 일시에 몰리며 공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데다 그나마 입주한 주민들은 주차나 소음 등 불편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거주하게 될 수요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공급자 위주의 주택 정책이 낳은 비극이라고 입을 모은다.
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인허가된 도시형생활주택은 6만9,119호로 전년에 비해 78.7% 감소했다. 올해 역시 5월까지 2만6,283가 인허가돼 감소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도입 첫해인 2009년 1,688가구가 인허가를 받은 데 이어 2010년 2만529가구, 2011년 8만3,859가구, 2012년 12만3,494호 등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도입 5년을 맞은 지난해 처음으로 이런 증가세가 꺾이고 하락세로 전환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규제 완화와 이에 따른 공급 과잉을 원인으로 꼽는다. 정부는 2009년 ‘8ㆍ23 전세시장 안정대책’의 일환으로 도시형 생활주택 건설 활성화를 내세운 이후 총 여섯 차례에 걸쳐 다양한 규제완화 및 지원 대책을 쏟아냈다.
정부가 주차장, 진입도로 등의 건설기준을 대폭 완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도시형생활주택 주차공간은 상업지역과 준주거지역을 기준으로 전용면적 120㎡당 차량 1대 공간을 확보하도록 했다. 가구당 전용면적이 보통 20~30㎡인 것을 고려하면 5~6가구당 차량 1대 분을 확보하면 되는 셈이다. 주차장법이 1990년대 가구당 0.5대에서 2002년 가구당 1대까지 강화된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규제완화라 할 수 있다.
또 건물 이격 거리는 이전에는 건물 높이의 2분의 1이었는데, 도시형생활주택에선 4분의 1로 줄었고, 소음 규정은 현재 150가구 미만의 경우 소음 보호기준 적용이 배제되도록 했다.
사업자에게 최대 5,000만원까지 건설자금을 지원하고, 관리사무소 등 부대시설 설치의무를 면제해주고, 사업 승인 대상을 기존 20가구 이상에서 30가구 이상으로 완화하는 조치도 이어졌다.
이 같은 규제 완화 조치는 도시형생활주택의 주거 환경 악화로 이어졌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팀장은 “도시형생활주택은 아파트나 오피스텔과 비교해 마감재의 질이 크게 떨어지고 입지가 좋지 않은 곳에 지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입주한 이들의 입소문을 통해 기피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향후 전망은 더욱 우울하다. 인허가 후 입주까지 약 2년여가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1~2년 정도는 공급 물량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윤지해 부동산114 선임연구원은 “도시형생활주택은 미분양이나 공실률, 시세 등에 대한 공식 통계가 없어 현황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존 주택시장의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잠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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