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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열의 볼링그린 다이어리<62>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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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열의 볼링그린 다이어리<62>자신감

입력
2014.07.0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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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그린 고등학교 선수들을 가르치는 짬짬이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건우의 경기가 있으면 가서 보기도 한다. 이곳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경기장까지 데리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항상 같이 있게 되고 몇 게임만 보다 보면 금방 누가 누군지 알게 된다. 사실 우리가 새로운 동네에 이사를 가도 적응하기 힘든 점이 있는데 미국에서 동양인으로 사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그리고 트레블 야구팀은 첫 시즌이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 중에 한 명이 건우의 농구팀에도 같이 있었던 잭(ZACH)이라는 친구로, 이 부모들이 건우가 게임을 하는데 적응을 잘 하라고 여러 가지를 신경 써주며 열심히 파이팅을 해 주었다. 한국에서라도 고마울 텐데 이곳에서 그렇게 도와주니 너무 좋았다. 그리고 첫 게임에 건우가 생각지도 않은 홈런을 쳤고, 당신 아들이 홈런을 친 것인 양 함께 기뻐해 주었다. 그래서 내가 이 분들을 위해 도울 것이 없나 생각했다. 잭은 보통 키에 좀 뚱뚱한 편이며 빠르지 않은 선수다. 그렇다 보니 팀에서 주축인 선수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선수를 도와주기로 마음 먹고 열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먼저 타격을 유심히 체크해 보았다. 이 선수는 전형적으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는 타자였지만 먼저 장점을 찾기로 했다. 야구는 파워게임이라고 할 정도로 힘이 필요한데 일단 다른 선수들에 비해 힘이 좋았다. 그리고 어쨌거나 타석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반대로 단점은 타이밍을 전혀 맞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투수가 빠른 직구를 던지면 스트라이드 하는 동안에 공이 들어오고, 변화구를 던지면 아예 먼저 스윙을 해서 볼을 제대로 맞히지 못하는 선수다. 그렇다 보니 본인 스스로도 타석에서 자신감이 없으며 위축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잭과 부모에게 다가가 도움을 주고 싶은데 어떤지 물었고, 그들은 흔쾌히 좋다고 하며 기뻐하는 것이었다.

사실 미국에서 아이들에 관련된 것을 조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이곳도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잭과 도와주고 싶은 다른 친구 몇몇에게 연락해 재능기부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부모들은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너무나 적극적이었고 심지어 연습 볼을 새로 사가지고 오는 성의까지 보였다. 일단 모든 것을 떠나서 그 부모들의 마음을 알게 되어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배팅을 시작했다. 잭은 타이밍이 문제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타이밍을 맞출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을 했으며 다음으로 직접 볼을 치며 느끼게 해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처음에 나는 가까운 거리에서 밑으로(언더 토스) 던져 주었는데 연속해서 다섯 번 연속으로 볼을 못 맞히며 헛스윙을 했고 얼굴빛이 빨개지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래서 나는 잭에게 내가 볼을 던지기 위해 팔을 뒤로 움직이면 너도 같이 스트라이드를 하라고 했고, 그랬더니 배트에 볼이 맞기 시작했다. 점점 중심에 맞기 시작하며 이 선수의 얼굴도 밝아지기 시작했다. 점점 거리를 멀리하며 속도를 증가시켜도 계속해서 좋은 타구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다음 단계로 오버핸드로 볼을 던져 주며 지금부터는 투구의 궤적이 다르다고 설명하고 내가 던질 때 손이 올라가는 시점에 스트라이드를 하라고 했다. 잭은 언더 토스와 같이 정확한 타구를 만들어 냈고 타구의 힘도 굉장히 좋았다.

사실 이 친구는 좋은 스윙 궤적과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잡아주면 되는 상황이었다. 타이밍은 야구의 전문 기술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투수에 따라 조금씩 시작 지점이 달라야 한다. 예를 들어 와인드업과 세트 포지션의 출발점은 당연히 달라야 하고 거기에 더해서 자신감의 차이다. 타격은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동작이긴 하지만 투수가 어떤 볼을 던질 지, 그리고 어느 코스로 던지는지 모르기 때문에 상황상황 마다 대처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타격 시간이 너무나 짧기 때문에 타석에서 많은 생각보다는 스스로를 믿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잭에게 게임과 같은 거리에서 강한 볼을 던져도 이제는 정확한 타이밍과 정타의 확률이 굉장히 높아졌다. 그리고 나는 잭에게 경기 상황에는 투수에게 집중하고 몸쪽과 가운데 볼은 적극적으로 스윙하며 투스트라이크 전까지는 아웃코스의 볼은 치지 말라고 요구했다. 며칠 후 게임, 주자 만루 상황에서 잭이 좌익수 키를 넘어가는 큼직한 싹쓸이 2루타를 날렸다. 올 시즌 첫 안타이자 타점이었다. 선수들과 부모들 모두 난리가 났으며 환하게 웃는 잭을 보니 나 또한 너무 기뻤다. 게임 후 잭이 나를 보며 “고맙습니다” 를 했을 때 나는 너무나 행복했으며 그것이 나의 도움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선수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결국은 타석에서의 자신감은 스스로 만드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기술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볼링그린 하이스쿨 코치ㆍ전 LG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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