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정상, FTA 연내 타결 합의 농산물 추가개방 피할 수 없을 듯
쌀 시장 완전개방·양파 등 가격폭락 "농업 최대위기" 反 정부 기류 거세져
농심(農心)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쌀시장 완전 개방(관세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연내 타결 합의 등으로 우리 농산물의 보호장벽이 잇따라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극에 달해 있다. 여기에 양파 등 일부 농산물의 가격 폭락 사태는 좀처럼 해결 기미가 없다. 하반기 농민들의 반(反) 정부 투쟁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6일 농민단체 등에 따르면 한중FTA중단농축산비상대책위원회 등 34개 단체는 14일 12차 한중 FTA 협상이 열리는 대구에서 대규모 집회(총궐기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집회 개최 여부는 8일 대표자 회의에서 결정될 예정. 지난해 11월 집회 이후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양국은 지난해 9월 교역품목 90%의 10년 이내 관세 철폐(1단계)에는 합의했지만, 나머지 관세 유지 품목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우리나라는 쌀을 비롯해 대부분의 농산물을, 중국은 철강 석유화학 등 제조업 분야를 관세 유지 품목으로 내세웠다. 우리 정부는 그 동안 농산물 개방만큼은 최대한 막겠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배추 무 고추 사과 등 대부분의 과채류는 초민감품목(관세 철폐 제외)으로 정하고, 쌀은 아예 입에 올리지 못하도록 ‘딜브레이커’(협상파기) 품목이라고 못박았다. 반면 중국은 고추 배추 무 등 현재 한국으로의 수출이 많은 품목 순으로 개방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9월 이후 10개월간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다.
이번 FTA 협상은 연내 FTA 타결을 가늠할 중대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두 나라 정상이 연내 타결에 합의한 뒤 열리는 첫 협상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논의의 물꼬가 터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주고받는 식으로 협상이 진전되면 농산물 등 일부 시장 개방이 불가피하다. 2012년 5월 개시 이후 지지부진하던 한중 FTA 협상은 지난해 6월 양국 정상이 만난 뒤 3개월 만에 1단계 합의를 이끌어낸 전례가 있다.
특히 양국 정상이 합의 조건으로 내건 “높은 수준의 포괄적인”이라는 문구가 변수다. 3월 타결된 한ㆍ캐나다 FTA의 관세 철폐 품목이 97.5%인 걸 감안하면 한중 FTA는 1단계 합의(90%)보다 개방비율을 더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양국이 개방을 꺼리는 민감품목과 초민감품목 수를 최대한 줄일 수밖에 없다. 역시 우리에겐 농산물 추가 개방을 의미한다.
농민단체들이 “한국 농업의 최대 위기”라며 강한 반발을 하고 있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정현찬 가톨릭농민회장은 “개방이 안된 지금도 중국산 농산물 천지인데 본격적으로 밀고 들어오면 농민뿐 아니라 좌판상인까지 죄다 죽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광천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 대외협력실장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들인데 타결 시점을 정해놓고 속도를 내면 협상의 질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쌀 관세화 문제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국회 공청회(11일) 이후로 쌀시장 완전 개방 공식화 선언을 미뤄 설득할 시간을 벌었지만 농민들은 오히려 반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어차피 정부가 9월말까지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쌀 시장 개방 여부를 통보해야 하는 만큼 성난 농민들을 달랠 시간이 많지 않다. 게다가 이미 정부의 방침은 ‘쌀 시장 개방’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정부의 전방위 여론전에 맞서 7~8월 농민 교육 활동, 9월 전국단위 농민대회를 추진 중이다. 일부 농민단체가 요구하는 쌀 관세율 공개, 양곡관리법 개정, 국회 비준 절차 이행 등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거의 없어 농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공산이 크다.
설상가상으로 좀체 해결 기미가 없는 양파 마늘 고추 등의 양념채소류의 가격 폭락은 정부에 대한 불만을 증폭시키고 있다. 양파 가격은 벌써 몇 달째 지난해의 반값(㎏당 400원) 이하로 뚝 떨어진 상태고, 경남 등 일부 지역에선 수매 거부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생산비조차 건지기 어렵게 되자 아예 수확을 포기하는 농가도 늘고 있고, 화가 난 농민들은 도청 앞에 양파를 가득 쌓은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종혁 전농 정책부장은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가격이 오를 기미가 없다”며 “수매 대책은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궁지에 몰린 농민들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지 정부의 고민도 점점 더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세종=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세종=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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