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위험 신입견 탓에 환자들 꺼려
모르핀 처방, 세계 평균 절반도 안돼
유명 걸그룹 2NE1의 멤버 박봄씨가 4년 전 마약류 일종인 암페타민 성분이 든 약품을 우편으로 국내에 들여오다 적발된 것이 최근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암페타민은 중추신경을 흥분시키는 일종의 각성제다. 미국에서는 의사 재량에 따라 처방되지만 국내에선 사용 금지돼 있다.
많은 이들이 마약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이런 종류의 약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사실 마약(痲藥)은 마취(痲醉) 작용이 있는 약(藥)이라는 한자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악마의 약’이라는 마약(魔藥)으로 오인되고 있다. 결국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하고, 결국 중독이 되는 '악마의 약'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환자가 약 사용을 꺼리고 있다.
말기 암 환자나 국내 성인 인구의 10%인 250만여명으로 추정되는 만성 통증 환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극심한 통증이다. 이때 효과적으로 쓰이는 것이 바로 마약성 진통제 모르핀이다. 쾌락 자극보다 통증 감소 효과가 커 모르핀에 중독될 확률은 극히 낮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모르핀을 세계 평균의 절반도 쓰지 않을 정도로 너무 아낀다. 비(非)마약성 진통제로는 통증 개선에 한계가 있어 통증 신호 자체를 차단하는 마약성 진통제가 필요하지만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꺼리는 경우가 많다. 이용주 서울성모병원 완화의료센터 교수 “알코올 중독 등의 약물 남용 경력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안심하고 써도 될 정도로 중독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그런데도 만성 통증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진통제 선택의 어려움이 주 원인이다.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가 주로 처방되는데 만성 통증은 이미 중추신경에 변화가 생긴 질환이라 말초신경에만 작용하는 NSAIDs로는 치료 효과가 제한적이다. 또한 위장장애 등 부작용이 많고, 장기 복용 시 심장질환이나 순환기계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보고가 늘면서 장기 치료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반면 마약성 진통제는 NSAIDs보다 통증 조절 효과가 뛰어나다. 그러나 ‘혹시 중독 되지 않을까’ ‘평생 끊지 못하면 어떡하나’ 등 불안감 때문에 처방을 주저한다. 중독은 쾌락을 경험하면서 발생하는 행동장애다. 그러나 만성 통증 환자의 경우 뇌의 마약수용체가 현저히 줄어 있고, 쾌락을 느끼는 신경반응체계 일부가 차단돼 있어 마약성 진통제로 쾌락을 느끼고 중독될 위험이 매우 적다.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서방형(徐放形ㆍslow-release)이나 며칠씩 효과가 지속되는 패치제 형태의 마약성 진통제가 사용되면서 중독 가능성이 더 줄었다. 미국 존스홉킨스병원 스리니바사 라자 교수는 2008년 미국통증학회에서 “3% 미만의 환자에게서만 약물 의존성이나 중독이 나타난다”고 밝힌 바 있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가 척추질환에 따른 만성 통증 환자 1,037명을 대상으로 듀로제식 디트랜스(펜타닐 성분의 서방형 패치제)의 임상시험을 한 결과, NSAIDs 등 기존 치료에 실패한 환자도 평균 49%가 통증 감소 효과를 보였다. 효과를 얻지 못한 환자는 3.3%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환자의 92.6%가 마약성 진통제가 기존 치료보다 좋다고 답했고, 84.4%가 임상이 끝난 뒤에도 듀로제식 디트랜스를 투여받았다. 효과를 느낀 대부분의 환자(92.6%)가 마약성 진통제를 계속 사용하길 원했다는 것은 만성 통증에서 마약성 진통제가 매우 효과적 치료법임을 웅변하는 것이다. 또한 이번 임상 결과 통증으로 인해 악화했던 일상생활 능력이 통증치료를 통해 회복됐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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