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지미 스코트

당신 지미 스코트

I hope I could always be good

To one who’ll watch over me~

1991년 3월 뉴욕, 전설적인 블루스 가수 겸 작곡가 독 포머스(Doc Pomus, 1925~1991)의 장례식장. 조지 거슈윈의 히트곡 ‘Someone to Watch over Me’가 흘러나오는 순간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 친숙한 노래를 그렇게 낯설게, 또 절절하게 부르는 가수가 도대체 누구인지 몰라서였다. 귓속말이 오고 가고,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노래만 들어서는 아이인지 노인인지, 아니 성별조차 알 수 없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U4Y45k2u7Mw)

그 주인공이 바로, 독 포머스의 오랜 친구이자 20세기 보컬 재즈의 가장 은밀한 전설, 지미 스코트(Jimmy Scott)였다. . 2000년 뉴욕타임즈가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부당하게 홀대 당한 미국 가수”라 했고, 가수 마돈나가 “노래로 나를 울게 한 유일한 가수”라며 우러렀다는 가수. 그가 6월 12일(현지시간) 숨졌다. 향년 88세.

독 포머스의 장례식장은, 이를테면 스코트가 66세의 컬트 스타로 재탄생하는 무대였다. 그 ‘무대’는 폐암 투병 중이던 포머스의 유언에 따른 거였다. 자신의 사단(師團)이라 부를 수도 있을 수많은 유명 가수들을 제쳐두고 스코트에게, 그것도 곡명까지 정해서, 추모곡을 불러달라고 부탁할 때 포머스의 본심은 당대의 음악계 실력자들에게 제 친구를 소개하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저 거슈윈의 노랫말처럼 포머스는, 무대에 서기 시작한 1930년대 이래 단 한번도 제대로 주목 받지 못했고 70년대 이후로는 무대에서 사실상 추방당한 친구 스코트를 내내 ‘바라보고(watch over)’ 있었고, 그가 떠난 뒤 많은 이들이, 그를 대신해서 스코트를 찾고 또 바라보기 시작했다.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는 공전의 드라마 히트작 ‘트윈 픽스’의 2부 마지막 에피소드와 92년 동명의 영화에 그를 출연시켜 대중적 명성을 얻게 했다. (‘Sycamore Tree’, http://www.youtube.com/watch?v=T8g_xpqjHKU) 락그룹 벨벳언더그라운드의 리더 루 리드(1942~2013)는 92년 앨범 ‘Magic and Loss’를 스코트와 함께 녹음하고 함께 전국 투어를 다녔다. 장례식장에서 스코트의 노래를 듣고 심장이 멎는 경험을 했다는 사이어레코드사 세이머 스타인 사장은 다음날 음반 계약을 맺고 이듬해 스코트의 사실상 첫 음반인 ‘All My Way’를 낸다. 그 음반은 92년 빌보드 재즈 차트 4위, 그 해 그래미상 후보에도 오른다. 그는 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당선 축하연에 초대돼 노래했다.( ‘Why Was I Born’, http://www.youtube.com/watch?v=-GxojK_Gc6c)

비평가들은 스코트의 목소리를 ‘천상의 음색’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그는 짧은 한 소절 안에서도 늙은 성대의 숙련된 떨림과 청년의 미성을 조화시켰고, 흐느끼는 듯한 여린 감성과 격정으로 솟구치는 힘을 담아냈다.

저 비평가들의 표현은 단순한 찬사 이전에 차가운 진실이었다. 스코트는 ‘콜만 신드롬’이라는 희귀한 유전성 성호르몬 결핍증 환자였다. 그는 2차 성징을 경험하지 못했고, 당연히 변성기도 거치지 않았다. 10대에 성장도 중단돼 37세 되던 해까지 그의 키는 152cm에 불과했다.

지미 스코트(본명 James Victor Scott)는 1925년 7월 17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10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는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배웠다. 교회 피아노주자로 그의 노래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어머니 저스틴은 스코트가 13살 때 교통사고로 숨진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아버지 아서 스코트는 형편이 어려워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으로 보낸다.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스코트 역시 극장 검표원, 보드빌 공연장 주차안내원 등을 하며 스스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가끔 노래도 불렀을 것이다. 그러다 40년대의 인기 보드빌 공연팀 ‘에스텔레 칼도니아 영’에 발탁돼 떠돌이 가설극장 무대에서 정식으로 노래를 불렀다. 당시 스코트는 19살이었고, 훗날 그는 팀 리더이자 댄서였던 칼도니아를 자신의 엄마 같은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4년 뒤인 48년 그는 당대의 유명 R&B팀 햄프턴 밴드에 보조싱어로 발탁되고, 이듬해 그의 생애의 노래라 할 만한 ‘Everybody’s Somebody’s Fool’을 녹음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srP6mod9lCo) 그 노래는 50년 빌보드 R&B차트 6위까지 오르며 햄프턴밴드의 성가를 드높였지만, 그는 단 한 푼의 주크박스 수입도 얻지 못했다. 노래는 햄프턴 밴드의 이름으로 발표됐고, 음반 어디에도 그의 이름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팬들은 오랜 세월 동안 밴드의 한 무명 여성 싱어로 그(의 목소리)를 기억했다.

스코트는 뉴욕과 뉴저지의 작은 클럽들을 떠돌며 빌리 할리데이, 찰리 파커 등 당시 이미 거장이었던 선배 뮤지션들과 함께 공연하기도 했지만, 대중적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할리데이의 마음을 사로잡아 평생 친구가 됐고, 훗날 유명한 가수가 되는 이들의 마음을 흔드는 뭔가를 지녔던 듯하다. 마빈 게이는 스코트의 50년대 절제된 창법을 자신의 발라드 창법에 접목했다고 밝혔고, 프랭키 발리, 조 페시 등도 스코트의 제자라고 공언하곤 했다.

그들 중에는 ‘소울 뮤직의 대부’ 레이 찰스(1930~2004)도 있었다. 1963년 레이 찰스는 스코트에게 자신의 텐저린 레이블로 음반을 만들자고 요청, 그 유명한 ‘Falling in Love Is Wonderful’을 발표한다. 찰스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고 당대 최고 뮤지션들이 세션으로 가담한 그 음반은, 하지만 세상에 나오자마자 사라진다. 무명 시절 스코트가 계약을 했던 음반업체 ‘사보이’가 그와의 계약은 종신계약이라며, 법적 시비를 걸고 나선 탓이었다. 사보이는 스코트를 R&B 가수로 키우기 위해 몇 개의 음반을 냈으나 별 재미를 못 본 상태였고, 스코트는 선곡서부터 창법까지 일일이 간섭하며 R&B의 틀 안에 가두려던 음반사와 불화했다. 대우 역시 형편없었던 듯하다. 훗날 스코트는 음악잡지 ‘롤링스톤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찰스는 내게 2,500달러의 선금을 줬는데 그 액수는 사보이가 주던 돈의 10배가 넘는 액수였다. 부를 노래도 10곡 모두 내게 선곡하도록 했고, 전곡의 피아노 반주를 그가 했다. 녹음을 끝낸 뒤 레이는 내게 ‘지미, 바로 이거야. 이 음반으로 당신은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당신이 받아 마땅한 대접을 받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고 했다.

40년 뒤인 2003년 LP가 아닌 CD로 세상에 다시 나올 때까지 스코트의 63년 음반은 재즈 마니아들 사이에서 풍문으로만 떠도는 전설의 명반이었다. 사보이 측은 69년 스코트의 또 다른 음반마저 발매를 막았고, 낙담한 스코트는 고향 클리블랜드로 낙향해 음악과 담을 쌓은 채 호텔 종업원, 병원 보조간호사 등으로 일하며 허덕지덕 집세와 밥값을 벌어야 했다. 그 세월이 장장 20년이었다. 그는 음악계에서 사실상 잊혔고, 대다수 팬들은 그가 사망한 것으로 알았다. 70년대 한 지역 라디오 방송 진행자가 그를 숨졌다고 소개하며 노래를 들려줘, 방송을 우연히 듣게 된 스코트의 아내가 항의 전화를 건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열정적인 소수의 친구들은 그를 잊지 않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연예 기획자이자 유명 프로듀서인 퀸시 존스는 88년 ‘빌리지 보이스’와의 인터뷰에서 50년대 스코트의 공연을 처음 본 순간을 회상하며 “그는 내 무릎을 꿇게 했고, 소름을 돋게 했다. 그 이후로 지미는 매일 밤 내 가슴을 찢곤 했다.”고 말했다. 루 리드는 “그는, 만일 이런 표현이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수들의 가수’다. 지미의 노래를 듣는다는 건 자신의 심장을 연주하는 것과 같다.(…) 그의 노래가 끝나면 우리는 하릴없이 자신의 누추한 세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다만 그의 노래가 다시 시작돼 우리를 더 멋진 세상으로 데려가 줄 때까지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식 홈페이지, http://www.jimmyscottofficialwebsite.org)

재즈뮤직의 정전(正傳)으로 꼽히는 요하임 베렌트의 방대한 재즈북에는 지미 스코트의 이름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지미의 존재 자체를 몰랐을 수도 있고, 이미 거장이 된 이들을 먼저 챙기느라 잊었을 수도 있고, 대중적으로 잊힌 가수라 건너뛰더라도 상관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또 어쩌면 지미 스코트의 모호한 정체성 탓일지도 모른다. 그의 음색과 음역은 공인된 재즈거장들의 보편적인 음색이나 음역과 판이하게 달랐고, 그래서 자주 R&B 가수로 분류되기도 했다. 스코트는 그의 전기 (2002)을 쓴 데이비드 리츠에게 이런 말을 했다. “평생동안 나는 괴상한 놈(queer), 계집애, 할망구, 괴물(freak), 호모(fag)라고 조롱당하곤 했다. 가수로서도 여성스러운 음색 때문에 비판을 받곤 했다. 그들은 내가 어느 음악 범주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평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팝도 재즈도 아니라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내 시련이 곧 나의 구원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다.” 그는 미국의 공영 라디오방송 NPR(National Public Radio)과의 1992년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목소리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더 깊은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37세 되던 1962년, 그의 키가 갑자기 자라기 시작한다. 1년 새 무려 8인치가 자랐다고 한다. 의사는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고, 다만 꾸준히 운동을 하면 증세가 ‘호전’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스코트는 그 변화를 위기로 인식했던 듯하다. 그는 전기 작가에게 “호르몬의 장난으로 내 목소리가 달라질까 봐 두려웠다”고, “결핍에서 비롯된 문제들이 많았지만,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내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고 말했다. 그는 의사들의 조언을 무시했다.

다행히 그의 목소리를 훼손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50년대 목소리보다 좀 더 무겁고 강해진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NPR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것은 신체의 변화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그가 지내온 세월의 부피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노년의 그의 음색과 노래의 호소력은 청년 시절의 그것보다 훨씬 강렬할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는 시각적인 대조 효과도 부인하기 힘들다. 콘트랄토 음역을 넘나드는 그의 오묘한 음색은 말쑥한 청년의 얼굴보다 충분히 늙어 달관한 듯한 얼굴과 표정과 더 잘 공명하는 듯 보였을 것이다. 거기에는 또 한 평생 거친 운명에 맞서며 성숙시켜 온 삶의 이야기, 그의 인생 이야기가 더불어 스몄을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자잘한 삶의 이야기가 담긴 노래들을 좋아한다. 그런 노래들이 내게 위안이 되고 또 청중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 노래들은 또, 스코트 자신에게는 구원이었다. “노래할 때마다 나는 고양되는 느낌을 받는다. 신이 나를 이 기괴하고 작은 몸통 속에 담았던 데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나 자신이 되기 위한 용기였다. 그 용기가 삶을 더 낫게 만든다.” 그는 2007년 미국의 가장 영예로운 재즈 타이틀인 NEA(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재즈마스터’ 상을 수상했다.

스코트는 20살 때부터 모두 다섯 번 결혼했고, 2003년 마지막 아내인 지니와 결혼해 함께 살았다. “지미는 늘 친절했고, 겸손해서, 누구를 만나든 상대가 특별한 사람이 된 듯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비록 자신은 힘든 삶을 살았지만 어떤 분노도 품고 있지 않았다”고 “그는 지상의 천사였다”고 지니는 말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