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언어의 혁명의 저자’로 알려진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경험은 실천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는 경험과 실천을 구별하기를 원하며 헤겔의 변증법적 운동을 통해 이를 제시한다. 헤겔은 변증법적 운동속에서 의식 앞에 진실한 대상이 의식을 위해 다시 출현할 때 우리가 경험이라고 부르는 것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진정한 경험은 대상이 어떤 계기로 형성되고, 그 형성은 의식이 자신에게로 다시 회귀함으로써 일종의 간섭이 이루어진다고. 그리고 그것은 실천이 된다고.
김남주는 잘 알려졌다시피 감옥 안에서도 시를 쓰면서 투쟁한 한국혁명사의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10년간 감옥에서 250여 편의 시를 썼다. 종이와 연필이 없어 우윳곽에 못으로 시를 썼으며, 간수의 눈을 따돌려 그것을 밖으로 보냈다. 김남주는 노동자들과 농민들이 인류가 정말로 필요한 것들을 생산해 내는데 그것을 자본가들에게 오히려 빼앗기고 천대와 학대 속에서 살아가는 것에 분노하고 시를 썼다. 최근 일본의 젊은 사상가 사사키 아타루의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보며 새삼 혁명에 관한 생각을 좀 해 보았다. 사사키 아타루는 우리는 모두 혁명으로부터 왔으며, 문학의 힘을 혁명에서 찾고 그걸 돌보는 게 자신의 일상과 의지라고 말한다. 그에게 혁명이란 피나 폭력의 냄새보다는 인류 속에서 조용한 것이지만 끊임없이 이어져 온 것으로 묘사된다. 그 혁명은 문학에 다름 아니며 읽고 써나가는 것 자체가 혁명이라며 그는 결계를 다짐한다. 그는 니체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미래의 문헌학’을 믿는다. 사사키 아타루의 책을 읽는 동안 그의 차갑고 균형있는 문학에 대한 신념과 의지에 난 뜨거워졌으나, 실천과 투쟁이라는 뜨거운 혁명을 이야기 했던 시인 김남주 역시 동시에 떠오르곤 했다. 대학시절부터 김남주 시인은 내게 끊임없이 읽고 쓰고 행동했던 전사(戰士)로서의 시인이었으니까.
김남주 시인의 연대기에는 유물론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는 요소가 다분하다. 자연속의 객관적인 법칙이 인간과 자유의 관계 안에서도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에 유물론은 기인한다. 그리고 그것은 김남주 시인의 시와 혁명에 대한 역사의식이기도 했다. 해방과 자유에 대한 그들의 능동적인 태도와 혁명에 대한 의지는 김남주 시인이 살아 생전 투쟁했던 흔적과 닮아 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사라지지 않는 사회에 대한 대한민국의 현재적 투쟁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인으로서 김남주는 말하는 듯 하다. 시를 쓰고 인간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인문학이라면 인문학은 자연의 추동이며 시는 특별한 순간에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고. 시는 악조건을 조건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그리고 해방가이자 전사로서 김남주는 내게 말한다. 인간 안에는 무수한 인간계(人間界)가 있으며 인간의 들 속에 자생된 인문학이 시(詩)라고. 혁명에는 구체적인 생활의 냄새와 살냄새와 구더기들이 함께 끓고 있다고.
김남주 시인은 여전히 우리의 시야에 닿지 않는 곳에서 투쟁을 하고 있다. 그의 육신은 흩어졌지만 지금 이 시대까지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우리들의 문제가 집중된 공유지를 통과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재에 혁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독재가 노동력을 약탈하고 ‘계급의식’ 속으로 우리들을 밀어 넣으려 했던 시기는 모두 끝이 났는가? 역사 속에서 시와 혁명의 순교로 희생된 그들은 의사(義士)처리 하나 되지 않았으며, 그들은 지금 이 순간도 우리가 모르는 무인구(無人區)에서 또 다른 폭력과 구조에 맞서 혁명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자유와 해방을 위해 조금 앞서 태어났고, 죽음 앞에 맹혹하게 쓰러져간 생체병기 김남주 시인은 우리 해방사에 투사된 전사(戰士)의 DNA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의 혁명 DNA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고 싶은 시절들이다.
나는 죽으면서 유산으로 남기지 않겠네…중략/바위와 같은 단결을 남겨 두고 가겠네/나의 칼, 나의 피를 남겨 두고 가겠네 (김남주 ‘죽음을 대하고’ 중에서)
김경주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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