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힘이 센 이웃이다. 남한보다 북한과 더 친했다. 그랬던 나라가 어느덧 동반자가 됐다. 동맹 미국이 질투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친구를 마다할 수도 애인과 헤어질 수도 없다.
“어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은 역사적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중국 최고지도자가 북한에 앞서 한국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 그러나 한중 양국 관계에 머물던 시야를 넓히면 반가움이 줄고 대신 걱정이 커진다. (…) 애초에 ‘한국 먼저’가 중국의 결정이듯, 이번 외교게임 전체가 중국의 패에 좌우되는 특이한 구조다. (…) 미일ㆍ한미 동맹으로 좌우를 삼은 3각 동맹의 아래쪽은 한일우호라는 점선으로 떠받쳐져 왔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최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 한일 관계가 더욱 소원해지거나 치유되지 않는 것은 중국의 이익에 들어맞는다. (…) 중국에 한국이 호응하는 듯한 모습은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을 자극한다. (…) 더욱이 ‘북한 길들이기’라는 단기 목표에도 쓰임새가 있다. 이와 달리 한국은 가늠할 간접효과가 전무하다. 북한 문제가 그 동안 대중 관계의 정치적 동인이었지만, 이번 한중 정상회담을 고비로 아이러니컬하게도 중국의 지렛대 역할은 크게 희석됐다. (…) 거꾸로 한중 양국의 과도한 접근은 한미동맹의 속살을 해칠 수 있다. (…) 시 주석은 한국을 먼저 방문해 먹음직스러운 만두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내밀었다. 그 만두에 약한 독이라도 들어있거나 지나치게 기름기가 많아 장이 약한 체질에 맞지 않다면 베어 물어 슬쩍 맛 보는 데 그쳐야 한다.”
-독 만두 베어 물기(한국일보 ‘황영식의 세상만사’ㆍ논설실장) ☞ 전문 보기
“미국과 중국과 일본의 미래구상은 과거 제국주의로 돌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과거인 전근대 중화질서로 돌아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의 구상은 기존에 그들이 그 안에서 부유하고 강해질 수 있었던 현재의 국제질서를 대안이 없는 한 보수,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 즉 공통분모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래 구상을 위해 무력사용을 할 가능성은 이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세력과 움직임에 대해서일 뿐, 대량살상능력을 가진 서로 간에 자살공격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세계화로 인해 거의 모든 국가가 자본주의 근대화를 이룬 현재, 그리고 다자주의를 기반으로 한 세계시장이 열려 있는 현재, 과거 제국주의 시대와 같은 땅따먹기 무력충돌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한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할 이유가 없다. (…) 중국이 이 질서로 들어온 역사가 짧지만 중국 역시 이 질서 속에서 강해졌고 또 다른 질서라는 대안이 없다. 따라서 우리의 대중정책은 중국이 역방향으로 역진하지 않도록 국내외적인 안정을 이루게 도와주는 것이다.”
-미ㆍ중 사이에서 선택할 필요가 없다(경향신문 ‘정동칼럼’ㆍ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 전문 보기
납세 의무는 예외 없다. 또 불로소득 과세는 근로소득보다 더 철저해야 옳다. 근로도 의무여서다. 임대소득 감세가 부동산 경기를 띄운다는 논리는 부자 면죄부 발급을 위한 핑계다.
“당초 정부 방침은 현행법상 과세 대상이지만 그간 주택 임대 현황을 파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납세 의무를 유보했던 임대소득에 앞으로 세금을 매기겠다는 것이다. (…) 하지만 즉각 소위 기득권층의 반발에 직면했다. (…) 여기에 일부 언론은 부동산시장을 망치는 모든 악의 근원이 임대소득 과세인양 몰아갔다. ‘변경 불가’라던 관련 부처 장관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은 두 번에 걸쳐 ‘후진’하더니 결국 멈춰 서버렸다. (…) 임대소득은 대표적인 불로소득이다. 세법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정부가 방치한 결과, 임대소득을 신고하고 세금을 내는 집주인은 거의 없었다. 그런 비정상의 정상화마저 막힌 꼴이니 땀 흘려 벌어들인 근로소득을 한 푼 에누리없이 원천징수 당하는 월급쟁이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다. (…) 부동산시장을 살리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 그러나 임대소득 과세만 미루면 부동산이 벌떡 살아나리라는 기대는 미몽에 불과하다. 이 정부 들어 부동산시장이 주기적으로 거래절벽 현상에 시달린 건 원칙 천명보다 오락가락 정책 ‘혼선’과 ‘불신’ 탓이 크다. 사실 나는 집이 두 채다. 월세도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따지면 임대소득 과세 유보를 반겨야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원칙과 신뢰’라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이번에는 부디 지켜지길 바란다. 과세가 원칙이라면 나는 기꺼이 세금을 내겠다.”
-내게 세금을 허하라(한국일보 ‘36.5°’ㆍ고찬유 경제부 기자) ☞ 전문 보기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 임대 소득에 대한 세금을 깎아주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 과연 그런가. 국토부의 발표에 의하면 임대소득이 2천만원이 되려면 월세가 167만원, 전세보증금이 14억5천만원이 넘어야 한다. 서울 강남구의 30평형대 아파트 시가가 10억원 정도인데 전세보증금만 14억원이 넘는 부동산을 가지고 임대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영세민인가. (…) 결국 이 정책은 탈세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채, 오로지 부자와 고소득자만을 위한 정책이고 이들을 위해 조세형평이라는 ‘정상’을 비틀고 있는 것이다. (…) 정부는 부동산 경기부양을 거론한다. (…) 지금 부동산 경기침체의 핵심은 사람들이 집을 사지 않는 것이고 그 밑바닥에는 부동산 가격이 장기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돈 몇 푼을 부자 손에 쥐여주면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기적적으로 살아날 것처럼 외치고 있는 것이다. (…) 정부는 금융소득,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부담이 이미 근로소득에 비해 낮은데도 불구하고 이런 비정상을 더 확대시키려 하고 있다. 중산층의 소득 증가에 의한 내수 활성화라는 건전한 길을 외면하고, 부자감세와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등 거품의 힘을 빌려 내수를 띄우려 하고 있다.”
-피케티와 부자감세(6월 17일자 한겨레 ‘왜냐면’ㆍ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 ☞ 전문 보기
현오석은 힘 없는 경제부총리였다. 대통령 입만 바라보고 받아 적기 바빴다. 그의 입을 주목하는 이는 시장에 없었다. 나무토막처럼 조롱 당하다 쫓겨났다. 새 왕으론 뱀이 올 거다.
“우선 분명히 해둘 게 있다. 필자는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현 부총리가 진작 경제팀 수장 자리에서 물러났어야 한다는 세간의 얘기에 동의하는 쪽이다. (…) 현 부총리는 작년 2월 취임 이후 3차례나 경질 위기를 겪었다. (…) 경질 위기를 넘길 때마다 내상은 깊어졌다. 현 부총리가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 부총리가 이렇게 궁지에 몰려 퇴장하게 된 것이 오로지 그의 잘못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경제부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해 국가경제의 미래를 위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자리다. (…) 대통령이 힘을 실어줘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 공무원들, ‘눈치가 백단’이다. 실ㆍ국장 승진 인사도 맘대로 못하는 힘없는 수장에게 몸 바쳐 일할 공무원이 몇이나 될까. 안팎에서 흔들리는 부총리 말을 다른 부처는 듣겠는가. 권한과 영역 다툼을 하는 부처들을 기재부가 조정하겠다고 나서도 영이 서질 않는다.”
-굿바이 현오석(동아일보 ‘광화문에서’ㆍ신치영 경제부 차장) ☞ 전문 보기
“이달로 취임 1년3개월째인 그(현오석 경제부총리)가 경제수장으로 보여준 성과는 거의 없다.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그리지 못했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는 애초부터 없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시장참여자들은 더 이상 그의 입을 주목하지 않는다. 능력ㆍ소신ㆍ책임감ㆍ리더십이 없는 ‘4무(無)부총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도 능력을 발휘한 것이 있긴 하다. 만기친람(萬機親覽)하는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깨알같이 받아적은 뒤 실행에 옮기는 ‘피동형 경제수장’의 전범을 보여준 것이다. 박 대통령이 “투자하는 분들을 업고 다녀야 한다”고 하자 그는 새만금산업단지로 달려가 ‘어부바 퍼포먼스’를 했다. 대통령이 공기업 개혁을 주문하면 공공기관장을 소집해 “파티는 끝났다”며 엄포를 놨다. 지난해 대통령의 “세제개편안 원점 재검토” 지시가 떨어진 지 나흘 만에 수정안을 내놨다.”
-‘피동형’ 경제수장 관찰기(6월 5일자 경향신문 ‘정동에서’ㆍ박구재 경제에디터) ☞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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