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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의 음악 재즈, 그러나 아름다운…

입력
2014.07.0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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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그러나 아름다운' 제프 다이어 지음ㆍ한유주 옮김ㆍ사흘 발행ㆍ352쪽
'그러나 아름다운' 제프 다이어 지음ㆍ한유주 옮김ㆍ사흘 발행ㆍ352쪽

“사랑은 즐겁거나 슬프죠 / 평온하거나 정신 나간 짓이죠 /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 그러나 아름답죠.”

재즈곡 ‘그러나 아름다운’의 1절 가사다. ‘아름다운’ 앞의 ‘그러나’가 뿜는 수많은 의미를 생각하면 이보다 멋진 노래제목이 있을까 싶다.

영국의 논픽션 작가 제프 다이어가 이 멋진 제목을 앞세워 재즈를 탐구한다. 시간 흐름과 장소, 스토리가 뒤죽박죽인 유럽 예술영화 같이 구성돼 있지만 자연스럽게 읽혀진다. 요점을 정리하자면 이 책은 1940년대 재즈의 황금기를 빛내던 8명의 연주자를 통해 재즈가 무엇인지 ‘은유’한다. 하지만 그 이상이다.

레스터 영, 텔로니어스 몽크, 버드 파웰, 찰스 멍거스, 벤 웹스터, 쳇 베이커, 아트 페퍼, 듀크 엘링턴 등 재즈 거장들로 빙의한 저자는 그들 의식의 흐름을 소설처럼 써내려 가는데 그 문장들은 모두 철저히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한마디로 논픽션과 소설의 경계 위에서 재즈처럼 자유롭게 미끄러진다.

뉴욕의 재즈 연주장소인 버드랜드에서 시작한 얘기는 느닷없이 신병훈련소에서 가혹행위를 당하는 ‘관심병사’ 레스터 영으로 흐르고, 군교도소로 옮겨가는 식이다. 거장을 쫓아 저 멀리 덴마크 코펜하겐으로도 가고 벨뷰 정신병원, 샌 쿠엔틴 교도소도 만나게 된다.

듀크 엘링턴을 제외한 거장 7명의 공통점은 자신의 피와 살, 마지막 호흡까지도 모두 쏟아 부어 연주하는 자기 파괴자들이라는 것이다. 마약을 밥처럼 투여하고 법과 제도, 관습에 적응하려는 노력은 조금도 하지 않는 철저한 사회부적응자들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재즈의 제단에 제물로 바치기 위해 안달 난 사람처럼 보인다.

저자는 재즈라는 장르 자체에 위협적인 요소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그는 재즈 음악가는 “술, 마약, 차별, 몸을 혹사시키는 여행, 소모적인 시간들로 점철된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들”로 “재즈라는 형식에 재즈를 만들어낸 바로 그 당사자들을 불운한 운명에 굴복하도록 하는 어떤 요소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재즈는 동시에 저항이다. “그에게 미국은 끊임없이 얼굴을 후려치는 강풍과도 같았다. ‘미국’이라는 단어는 그에게 백인들의 미국이라는 의미였고, 그는 백인들의 미국이라는 표현을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모든 것들에 사용했다. …다른 사람들은 미국이 산들바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에게는 분노였고, 나뭇가지들도 고요하고 건물마다 내걸린 성조기가 한낱 별 무늬 스카프처럼 축 늘어져 있을 때 조차도 그는 분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베이시스트 찰스 멍거스를 묘사한 대목이다. 이 구절을 읽은 후 그의 명반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를 들으면 그런 분노가 더 선명하게 들어온다. 미국에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이 자기 정체성을 지키고 존엄성을 지키려 한 것과 재즈의 발전사는 도저히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재즈는 상실과 그리움이기도 하다. “블루스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저자는 색소폰 연주자 아트 페퍼의 입을 빌어 이렇게 답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어떤 문제 때문에 어떤 장소에 혼자 갇힌 느낌이랄까. 그리고 여자 친구와 그녀로부터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의 느낌.” 재즈는 그러나 아름답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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