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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의 길 위의 이야기] 망상

입력
2014.07.0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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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동안 환상이나 망상을 완전히 배제하기란 불가능한 일이고 또 어느 정도의 환상과 망상은 뻑뻑한 삶의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환상이나 망상이 점점 더 늘고 있다는 건 무언가 지금의 삶이 불만족스럽다는 징후일 것이다. 나는 오늘은 이런 망상을 해본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절대로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서는 안 되는, 비교적 조직력이 허술한 산악회에 가입해, 꼬박꼬박 회비를 내고,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 전국 방방곡곡의 산길을 걷고 싶다는 것. 통보받은 집합 장소에 제일 먼저 도착해 ‘○○산악회’라는 플래카드가 걸린 전세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차례차례 버스에 오르는 회원이라는 이름의 타인들을 무심한 눈으로 감상하다가 잠을 청하는 것. 그리고 선행자의 뒤통수와 등과 엉덩이와 종아리를 눈으로 쫓으며 아무 생각 없는 육체를 끌고 하루 종일 산을 오르는 것. 힘들게 지고 올라간 무언가를 산 위에 부려놓고 한껏 홀가분해진 얼굴로 내 삶의 희망이나 근심을 묻고, 지친 동행자에게 귤과 생수를 건네고, 하산 후의 회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홀로 서울로 돌아오는 삶의 저녁. 비사교적이라는 이유로 산악회가 나를 제명하려 한다면, 좀 비굴한 모습으로 회식 같은 데 참석해 상냥하게 인사하다가, 몇 주 후에는 다시 본래의 생각 없는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 망상이 편리한 것은, 현실에선 책임져야 할 어떤 의무로부터도 해방된다는 것 아닐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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