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쌀 관세율 유예 종료 앞두고 국회 상임위 요구에도 입 꾹 닫아
산정 계산식은 쉽게 나오지만 국내ㆍ외 쌀값 대입 숫자가 관건
반대론자ㆍ상대국 양쪽에 눈치 "9월 말 WTO 통보 전 밝힐 것"
“미안합니다.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받아서….”
최근 정부의 쌀 관세율 계산 작업에 참여한 민간 전문가들에게 쌀 관세율과 관련한 질문을 던지면 하나같이 이렇게 답한다. 올해 말인 쌀 관세율 유예 종료 시점을 앞두고 있는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할 쌀 관세율에 대해 철통 보안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율 산정 과정에 참여한 민간 전문가들에게 함구령을 내린 것은 물론 소관 상임위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의원들에게까지도 관련 정보를 알리지 않고 있다. 농해수위 소속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몇 차례나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고 했다.
3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말 농업, 통상법 등 분야의 민간 전문가들과 함께 WTO에 통보할 쌀 관세율 산정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9월말 WTO에 통보하기 전 국내에 관세율과 산정 근거를 밝힐 예정”이라며 “당장은 공개가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쌀 관세율과 산정 근거를 당장 공개하면 쌀 시장 개방(관세화) 반대론자들로부터 3개월에 걸쳐 고강도 ‘사전 검증’을 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 경우 상대국들이 반대론자들의 비판 논리를 이용해 역공을 펼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산정한 관세율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있지만 산정 계산식은 사실 간단하다. 국내산 쌀값에서 수입 쌀값을 뺀 가격차이를 수입 쌀 값으로 나누고, 여기에 100(%)을 곱하면 관세상당치가 나온다. 여기에 개발도상국의 농산물 관세 감축률(Shadow reduction)인 10%를 빼면 관세율이 나온다. 가령 1㎏당 국내산 쌀값이 1,000원, 수입 쌀값이 200원이라면 관세율은 360%((1,000-200)/200×100×0.9)가 된다.
관건은 국내외 쌀값에 어떤 값을 대입하느냐다. 대입하는 국내산 쌀값은 높을수록, 수입 쌀값은 낮을수록 높은 관세율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국내외 쌀값 산정의 기준 시점은 우루과이 라운드가 진행되던 1986~1988년. 당시 국내 쌀 값은 농수산물유통공사(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ㆍaT)에서 매긴 소비지 도매가격, 한국은행이 물가지수 산출을 위해 조사한 가격 등이 남아있다. 전문가들은 이중 aT에서 매긴 가격이 WTO협정문이 요구하는 ‘지배적인 대표 도매가격’에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 aT의 국내 쌀값도 상ㆍ중ㆍ하품 가격으로 나뉘는데 당시 정부는 수매한 쌀의 80% 이상을 ‘상품’으로 분류했던 만큼 ‘상품’ 가격이 국내산 쌀값으로 사용될 개연성이 높다. 당시 ‘상품’ 쌀값은 ㎏당 평균 973원이다.
수입 쌀값은 변수가 더 많다. 기준연도 당시 쌀 수입이 거의 없었던 한국은 태국산 쌀을 연구용으로 수입했지만 그 양이 미미해 수입쌀 가격 기준으로 삼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WTO협정문은 수입쌀 가격 산정이 용이치 않을 경우 인접 국가의 수입 쌀 가격이나, 인접 국가의 수출 쌀 가격을 대신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일본과 중국의 수입쌀 가격이 유력한 대안으로 꼽히는데 당시 일본이 수입한 태국쌀은 ㎏당 180원, 중국이 수입한 태국, 베트남 쌀은 ㎏당 147원대로 추정된다. 일본과 중국의 수입쌀을 근거로 산정하면 각각 396%, 504%의 관세율이 도출된다.
그렇다면 중국 수입 쌀값을 기준으로 삼는 게 유리할 것 같지만 무작정 높은 관세율을 부르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점에서 정부의 고민이 깊다. 관세율이 높을수록 상대국들이 더 가혹한 검증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물론 산정 근거가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며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관세율 외에도 쌀 수입 국가별 쿼터를 둘지, 수입한 쌀을 대외 원조에 사용해도 되는지 여부도 우리로선 중요 변수다. 높은 관세율만 고집하면 협상 테이블에서 잃는 것이 더 많을 거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