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 천체물리연구소 중력렌즈현상 이용해 세계 최초 발견
뜨고 지는 태양은 하나, 다른 태양은 우주 저 멀리
영화 ‘스타워즈’에 열광했던 3040 세대의 기억 속엔 ‘타투인’에서 두 개의 태양이 떠 있는 장면이 각인돼 있다. 주인공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고향이자 제다이 기사 오비완 케노비가 숨어 지냈던 타투인은 영화 속에서 두 개의 별(항성)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으로 나온다. 스타워즈가 만들어진 1970~80년대만 해도 타투인은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행성이었다. 하지만 이후 타투인처럼 중심별이 둘인 쌍성 행성계가 실제로 15번이나 발견됐다. 영화는 그렇게 현실이 됐다.
그리고 오늘, 우주는 베일을 한 꺼풀 더 벗었다. 16번째 새로운 쌍성 행성계가 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번 행성에선 타투인과 달리 두 태양이 따로따로 뜨고 진다. 우주는 더 이상 교과서 속 과학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소원한 두 중심별
새로운 쌍성계와 맨 먼저 조우한 사람은 우리나라가 연구를 주도한 국제공동 연구팀의 과학자들이다. 충북대 천체물리연구소는 “칠레와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뉴질랜드 등 남반구 곳곳에 흩어져 있는 망원경 9대가 우리은하 중심부를 관측한 결과를 연구팀이 함께 분석해 질량이 지구의 2배 가량 되는 쌍성계 행성을 발견했다”고 3일 밝혔다. 이 행성은 궁수자리 방향으로 약 2만광년(1광년=9조4,670억7,782만㎞) 떨어진 곳에 있다.
이 행성이 속한 쌍성계의 두 중심별(쌍성)은 서로 15천문단위(AU)만큼 떨어져 있다. 지구와 태양 사이 평균 거리(1AU=약 1억4,960만㎞)의 15배다. 이전까지 발견된 대부분의 쌍성계는 중심별들 간 거리가 5AU 안팎이고, 15AU가 넘는 경우는 하나뿐이다. 두 중심별 간 거리가 멀어질수록 열역학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중심별끼리 가까이 있으면 행성은 두 별을 하나로 인식해 두 별을 가운데에 두고 공전하게 된다. 태양계로 치면 태양이 2개인 셈이다. 타투인이 바로 이런 행성이다. 타투인에서 보는 하늘에선 두 태양(중심별)이 비슷한 위치에서 비슷한 속도로 뜨고 진다.
그러나 중심별끼리 멀리 떨어진 이번 쌍성계 행성에선 사정이 다르다. 이 행성은 두 중심별 중 한 별(모성) 근처에서 그 주위만 공전한다. 나머지 한 중심별(동반성)은 모성에서 너무 멀기 때문에 행성에까지 중력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우주공간에서 중력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동반성의 중력은 모성의 225분의 1밖에 안 된다. 따라서 이 행성에서 보면 매일 뜨고 지는 태양(중심별)은 둘 중 하나(모성)뿐이다. 다른 한 태양(동반성)은 낮에 보였다 밤에 보였다 하며 불규칙하게 뜨고 질 것이다. 두 태양이 따로따로 움직인다는 얘기다.
지구랑 닮았을까
쌍성계 행성 같은 태양계 밖 외계행성은 1992년 폴란드 과학자들이 처음 찾아낸 이후 지금까지 약 1,800개(푸에르토리코대 행성거주가능성연구소 집계)나 발견됐다. 해마다 100개 가까이 새로운 외계행성이 정체를 드러낸 셈이다. 외계행성 발견의 일등공신은 단연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망원경 ‘케플러’다. 2009년 우주로 올라가 수많은 과학자들의 사랑을 받다 지난해 봄 수명을 다했다. 케플러의 뒤를 이을 망원경 개발 경쟁이 세계적으로 점점 치열해지는 이유다.
충북대가 주도한 이번 연구팀은 케플러와는 정반대 방식으로 외계행성을 찾아냈다. 케플러는 별 주위를 공전하던 행성이 별 앞을 지날 때 잠시 빛에 가려져 어두워지는 순간을 포착해 외계행성의 존재를 알아낸다. 반면 이번 연구팀은 지상의 망원경으로 천체가 밝아지는 순간을 감지했다. 두 천체가 관측자와 일직선상에 나란히 있으면 관측자와 가까운 천체가 돋보기 렌즈 역할을 해 먼 천체가 훨씬 밝게 보이는 원리(중력렌즈현상)를 이용한 것이다. 이 방법은 직접 우주에서 넓은 영역을 관측하는 케플러에 비해 좁은 영역을 관측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외계행성 발견 확률이 크게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연구팀은 망원경 여러 대를 동원해 이런 단점을 극복했다. 중력렌즈현상을 이용해 쌍성계 행성을 찾아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대부분의 외계행성들은 지구보다 수백 배 무겁다. 지구보단 목성과 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발견된 쌍성계 행성은 질량이 지구의 고작 2배다. 게다가 모성과의 거리가 지구와 태양 간의 거리와 비슷하다. 혹시 지구와 환경이 비슷해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골디락스’ 행성이 아닐까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한정호 충북대 천체물리연구소장은 그러나 “모성의 에너지가 너무 작아 행성의 표면온도가 지구보다 훨씬 낮다”며 “생명체가 존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발견한 골디락스 행성은 모두 23개(푸에르토리코대 행성거주가능성연구소 집계)다.
연구팀은 이번 쌍성계의 모성은 질량이 태양의 약 9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추측했다. 동반성은 7분의 1 정도다. 별의 밝기가 질량의 4제곱에 반비례하니 이들 쌍성은 태양보다 수천 배는 어둡다. 모성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에선 낮에도 아마 지구처럼 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태양계에 익숙한 인류로선 굉장히 낯설지만, 따지고 보면 태양이 유별나게 밝은 별이다. 다른 별들 밝기의 평균치를 훨씬 웃도니 말이다.
이번 발견으로 태양보다 훨씬 가벼운 별도 행성계의 모성으로 존재할 수 있고, 태양계와 매우 다른 환경에서도 행성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명백히 증명됐다. 이제 과학자들은 우주엔 태양계 같은 단성계보다 쌍성계가 더 흔할 것으로 추측한다. 우주는 이렇게 늘, 과학의 상식과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래서 인류는, 우주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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