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지법 소년부 오용규 부장판사 재판 틈틈이 소년범들 쉼터 방문
음악회·축구 관람 등 함께 하며 건전한 성인으로 성장 도와 "법 처벌보다 인성 회복이 우선해야"
1일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는 경남 진해의 단독 주택. 거실에서 수박을 먹으며 휴대폰 게임을 하는 소년들이 수다를 떤다. “이 정도 사고면 딱 6호 처분(소년법에 의해 소년범을 아동보호시설로 보내는 처분) 받아야겠는데?”“에이~ 이 정도면 10호 처분(소년원에 최장 2년 동안 수용되는 가장 엄한 처분)이지!”라는 대화를 듣고서야 한때 크고 작은 사고를 쳐 소년 재판을 받은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여느 청소년처럼 밝고 꿈이 있었다. 재판에서는 엄격했지만 가정에서 생활하도록 지원하며 미래까지 관심을 가져주는 판사가 있었던 덕분이다.
소년들이 생활하는 이 곳은 창원지법(법원장 강민구)이 만든 사법형 그룹홈(청소년 쉼터) ‘샬롬’이다. 청소년 쉼터란 법원이 정한 대리인들이 부모처럼 소년범들을 데리고 살며 사회 적응을 돕는 일종의 대안 가족. 현재 창원지법 관내에는 총 7곳의 쉼터에서 쉼터당 6~10명의 소년범들이 생활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의 재판을 담당한 이가 창원지법 소년부 오용규 부장판사(41·사법연수원 18기)다. 그는 매달 100여건의 소년재판을 진행하는 틈틈이 경남 진해, 거창, 김해 등지에 흩어져 있는 쉼터를 방문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다. 매달 1~2번 아이들과 함께 구청에서 여는 음악회, 경남 FC 축구 경기 등을 관람하는 활동도 빼먹지 않는다. 그러느라 정작 자기 가족들이 있는 서울에는 2주에 한 번밖에 가지 못하지만 가족들 역시 오 부장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샬롬의 최고참인 A(15)군이 “(학교를 그만두고) 패션 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진지하게 들어 준 사람도 오 부장이었다. 그는 “친구 중에 유명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있어 그 바닥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데, 요즘 모델은 자기 관리에 엄청난 노력을 한다더라”며 “A는 키가 크고 몸매 비율이 좋아 모델 하면 잘 하겠지만, (학교 선생님 지적처럼) 일단 학교를 졸업하는 게 우선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A군은 학교를 마치기로 했다.
쉼터로 온 지 이틀이 된 B(14)군도 “법정에선 무서워서 (오 부장의) 얼굴도 못 쳐다봤는데, 쉼터에서 만나니 이상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며 “오 부장님이 치킨집 아르바이트부터 고시 공부 준비까지 세심하게 조언해 주셔서 뭔가 더 책임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법원은 소년법 1호 처분을 근거로, 소년원을 보낼 정도의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아이들에게 최대 6개월 동안 쉼터에서 살도록 명령한다. 쉼터가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판사들이 더 강한 처분을 내려 아이들을 시설로 보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창원지법 소년부는 2010년 10월 자체 예산을 쪼개 대리인에게 일정부분을 지원하며 쉼터를 만들었다. 국내 최초였다. 정부도 하지 않은 일을 지방 법원이 자체적으로 한 것이다.
오 부장은 “법의 처벌 기능도 중요하지만, 소년범에게는 건전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인성을 회복하는 데 방점을 둬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한 때 실수를 저지른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것 없다는 인식을 갖고 무언가 해보고 싶다고 꿈을 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가사 재판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부부들이 헤어지면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걱정이 돼 꼭 소년 재판을 맡고 싶었다”며 “쉼터에서 하루가 다르게 밝아지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 그 이상의 보람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청소년 쉼터는 경남과 부산 지역을 제외하면 활발히 운영되는 곳이 전무하다. 소년 재판부는 판사 퇴임 이후 변호사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전히 기피 부서이다. 유수천 샬롬 센터장은 “오 부장처럼 소년부를 지원해 아이들을 돌봐주는 적극적 사법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대법원에선 인사 정책을, 행정부에선 제도 및 재정 지원을 고민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창원ㆍ진해=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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