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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저 아이도 내 아이다

입력
2014.07.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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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케가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월요일에는 유치원에서 조카를 데려오는 일을 내가 맡게 됐다. 유치원을 찾은 첫날, 집에서 유치원까지는 걸어서 40분 정도의 거리였는데 그날따라 마음이 급했다. 조금이라도 늦어 혹시 조카가 당황하기라도 할까봐 나는 걸음을 재게 놀려야 했다. 5분 전쯤에 유치원 앞에 도착하니 이미 엄마들이 가득 서 있었다. 그런 일이 처음인 나는 모든 게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제 엄마가 아닌 고모가 마중을 나와 조카가 속상해하지는 않을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나를 못 보고 지나치지는 않을지, 유치원에서 친구와 싸우거나 선생님께 혼이 나 잔뜩 구겨진 얼굴로 나오는 건 아닐지 등등. 온갖 염려가 한꺼번에 마음을 조여 왔다. 나는 주변의 엄마들을 둘러보며 이 여자들은 평생 이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건가 싶어 아득해졌다. 적어도 몇 년은 아이를 마중하는 일이 하루의 가장 중요한 일과인 날을 보내는 건가 싶어 그것만으로도 그들이 대단해 보였다. 어떤 감정 상태이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던 중이던 간에, 매일 같은 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온다는 것. 그걸 가능하게 하는 모성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가 없는 나는 모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일까. 내 아이를 키우며 깨닫는 게 모성이라면 나는 인생의 큰 결핍을 품고 살아야 하는 건가. 그런 질문들이 피어났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모성이 자신이 낳은 아이 뿐 아니라 타인의 아이에게까지 확장되는 아름다운 장면과 종종 마주치곤 했다. 이 나라에서도, 바깥에서도 나이 든 남자들과는 대화가 잘 통하지 않을 때가 많았는데 나이 든 여자들과는 어디서든 마음이 곧잘 오갔다. 나는 그게 아이를 낳고 키워본 경험이 있는 여자들, 그래서 타인의 아이까지도 내 아이처럼 바라본 적이 있는 여자들의 힘이라는 생각을 했다. 파키스탄의 오지 심샬을 여행할 때였다. 그곳은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었다. 우연히 얻어 탄 차에서 만난 남자의 집에서 며칠 신세를 졌다. 고도가 3,500㎙를 넘는 마을에서 나무라고는 가시나무가 유일했다. 밥을 할 때만 한 번씩 떼는 귀한 장작이었다. 물집이 곪고 덧나 상처투성이였던 내 발을 본 그 집 할머니는 장작을 떼 물을 끓였다. 그 물에 소금을 풀더니 할머니는 나를 불러 앉혔다. 그리고 대야에 내 발을 담그고 주름진 손가락으로 꼼꼼히 씻어나갔다. 말이라고는 한 마디도 통하지 않던 할머니는 그저 묵묵히 내 발가락 사이사이를 씻어주셨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가슴은 도대체 얼마나 넓기에 제 배를 갈라 낳지 않은 아이에게도 이렇게 너그러울 수 있는 걸까. 나는 가슴이 아려왔다.

모성에 관한 또 하나의 슬프고 아름다운 장면과 마주친 건 일본에서였다. 후쿠시마의 3ㆍ11 원전 사고 이후 많은 엄마들이 도쿄를 비롯한 동북지역의 도시를 떠나 안전한 남서 지역으로 이주했다. 아이를 깨끗한 환경에서 키우기 위해 도쿄를 떠나야 한다고 했을 때 아이의 아버지들은 무력하거나 무책임했다. 과민반응이라 하며 무시했다. 엄마들의 일부는 남편을 설득해 함께 떠나왔고, 설득에 실패한 여자들은 이혼을 불사하며 아이를 데리고 이주했다. 그리고 그 마을 여자들의 도움으로, 혹은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에게 기대어 살아나가고 있었다. 내가 만난 노노코씨도 그런 엄마였다. 한류 스타의 사진을 찍기도 한 패션 사진가였던 그녀는 3ㆍ11 이후 규슈의 후쿠오카에 정착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결단을 감행한 어머니와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100인의 어머니”라는 사진집을 냈다. 한 아이의 어머니이기를 거부하고 미래 세대 전체의 어머니로 변화하는 ‘사회적 모성’을 선택한 여자들이었다.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모성을 지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어린 생명을 보듬는 모든 마음이 모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정한 모성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향해 ‘저 아이도 내 아이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4ㆍ16 세월호 사고와 GOP 총기 사고를 비롯해 아이들이 죽어가는 이 시대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런 사회적 모성일 것이다.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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